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연착륙하면 좋을 것으로 기대하는 영역이 두 군데 있다. 바로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이다. 연착륙의 의미는 줄어들거나 내렸으면 좋은데 갑작스럽게 큰 폭으로 추락하면 경제에 미칠 충격이 크기 때문에 서서히 빠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 대출을 갑자기 회수한다든지 해서 상환이나 연체가 급격히 진행되는 방식으로 가계부채가 줄면 가계파산과 소비위축을 가져와 경제가 위험해진다.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야 하지만 급격한 축소를 피하고 싶은 이유다.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다. 서울 기준으로 여전히 연간소득 대비 8~10배나 높은 아파트 가격은 UN 권고기준으로 봐도 3~6배 사이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소득이 그만큼 오르든지 해야 한다. 주택가격이 떨어져야 하는데 이 역시 갑자기 폭락하면 자산가치 하락을 불러일으키고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제가 나빠진다. 특히 부동산은 앞서 언급한 가계부채의 담보자산으로 돼 있기 때문에 담보가치 하락으로 인한 가계부채 위험을 키우게 된다. 결국 부동산 가격도 떨어지기를 원하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이다.그런데 대체로 연착륙을 원하는 분야들은 실제로는 연착륙을 시킬 마땅한 방법이 없다. 가계부채와 부동산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특히 경기가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그렇다. 더구나 가계부채와 부동산은 매우 긴밀히 연결돼 있고 함께 움직인다. 예를 들어 911조원의 가계부채 가운데 은행과 여신전문기관을 합쳐 공식적으로 ‘주택담보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것은 390조원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은 가계의 부채가 부동산이나 주택과 연관돼 있다. 예를 들어 가계부채 가운데 거주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은 약 30%, 거주 이외의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이 25%에 이른다. 전세나 월세 보증금으로 받은 금액도 30%에 이른다. 순수 신용대출을 제외한 88%의 대출이 부동산과 직·간접으로 연결됐다는 뜻이다.지난해에는 부동산 가격하락이 일시적으로 전월세 가격의 급상승을 촉발시키면서 전월세 상한제가 관심을 모았다. 더불어 전세보증금 대출 완화정책이 나오고 일부에서는 전세보증금 지원정책도 시도됐다. 덕분에(?) 전월세를 사는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다시 늘어났다. 전월세 폭등을 제대로 막지 못한 상황에서 대출을 풀었으니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올해 들어오면서 급증하던 전월세 가격이 주춤한 반면 주택가격 하락 폭이 좀 더 커지고 있다. 다시 관심의 초점은 세입자에서 집을 가진 주택 보유자들에게로 옮겨갔다. 그중에서도 대출 받아서 집을 산 하우스푸어(House Poor)에게로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중이 평균 10%를 넘는 경우가 100만 가구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전체 가구의 6% 정도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하우스푸어의 부채상환 위험이 현실의 문제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는 돈을 빌려 준 은행들이 대책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일부 은행에서 하우스푸어의 부채상환 불능사태에 대비해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 back)이라는 제도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리금 상환을 못해 경매 직전까지 간 주택을 보유한 하우스푸어에게 은행이 주택을 사들여서 다시 임대를 주는 방안으로 알려졌다. 일정기간 뒤에 하우스푸어의 경제형편이 나아지면 주택을 되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조건이다. 하우스푸어 입장에서는 집 자체가 통째로 경매로 넘어가 저가로 낙찰되는 경우보다는 손실을 줄일 수 있고, 당장 같은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집주인에서 세입자로 처지가 바뀐다. 그런데 은행들이 어쩐 일로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소하는 대책을 정부보다 빨리 만들어 줬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하우스푸어가 아니라 은행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매 직전까지 가서 부실화될 채권을 자산으로 전환시킨 후 이자 대신 임대료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조건에서는 손실이나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는 “상환능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대출을 남발했던 은행의 ‘약탈적 대출’ 영업이 하우스푸어 증가의 원인으로 작용했으므로 은행도 일정한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은행의 손해 없이 채무자의 부담을 지속시키는 ‘꼼수’를 고안하는 데 열을 올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계대출과 부동산 가격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은행들이 지금까지 부채규모와 주택가격 증가를 주도해 왔다는 점이다.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