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에 들어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 그래도 다른 국가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이며,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자본주의 새판짜기> 등의 저서를 쓴 바 있는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공공부채가 적은 국가. 둘째, 대외의존도가 낮은 국가. 셋째,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 과도한 공공부채는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는데 방해가 된다.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해 필요한 투자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공공부채뿐 아니라 민간부채도 적절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민간부채가 과도해지면 결국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 즉 국제 무역이나 국제 금융에 기대는 정도가 높을수록 세계 경제 상황에 휘둘리게 된다. 새사연이 꾸준히 주장해왔으며, <리셋 코리아>에서도 썼듯이 내수중심, 소득중심의 경제가 필요한 때이다. 민주주의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분배 문제를 두고 정치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한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참여와 이해가 가능한지가 향후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대니 로드릭은 이런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향후 세계 경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국가로 브라질, 인도와 함께 한국을 꼽고 있다. 왜일까? 한국은 세 가지 조건을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먼저 2011년 기준 우리의 국가채무는 420조 원으로 GDP 대비 34% 수준이다. 일본 199.7%, 프랑스 94.1%, 미국 93.6%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채무 외에 공공기관 부채가 463조 원 존재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의 경우,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해온 만큼 대외무역의존도는 100%에 가까우며, 외환위기 이후 실시된 자본유출입 자유화로 국제금융자본의 ATM(현금자동인출기)로 불릴 정도이다. 마지막 조건이었던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해보도록 하자.새로운 세계 경제의 승자(The New Global Economy’s (Relative) Winners)2012년 7월 3일대니 로드릭(Dani Rodrik)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세계 경제는 단기적으로 심각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유로존은 문제를 해결하고 파국을 면할 수 있을까? 미국은 새로운 성장경로를 찾을 수 있을까? 중국은 경제성장의 둔화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앞으로 몇 년 간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결정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면한 위기를 해결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운 국면에 접어든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려운 상태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던지 심각한 부채, 낮은 성장률, 국내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 등은 여전히 유럽과 미국에 남겨진 숙제이다. 유로존이 온전히 유지될 것이라는 최상의 경우에도, 유럽은 망가진 유럽연합을 재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발목이 잡힐 것이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이데올로기 양극화가 경제 정책에 있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실제로 모든 선진국은 실업과 재정적자라는 문제와 함께 불평등의 심화, 중산층의 축소, 인구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충돌을 촉발할 수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문제가 급격하게 움츠러들수록, 그 국가는 국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되기는 어렵다. 그런 국가는 다자간 무역 체계를 유지하는데 덜 우호적이며, 그들에게 손해라고 여겨지는 경제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거대 신흥시장이 그 공백을 채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들은 자신들의 국가 주권과 정책 사용 역량을 지키기 위해 날카로운 상태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 및 다른 문제에 있어서 국제 협력의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다.이러한 상황은 결국 모든 국가의 잠재적 성장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전의 20년 동안 경험했던 세계 경제의 성장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세계 전체의 경제적 불균형은 더 심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국가와 유리한 국가가 있을 것이다.상대적으로 유리한 국가들은 세 가지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것이다. 첫째, 공공부채가 높지 않을 것이다. 둘째, 세계경제에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경제성장의 동력은 외부보다 내부에 존재할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가 튼튼할 것이다. 공공부채를 적절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중요하다. GDP의 80~90%를 차지하는 부채는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심각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부채는 재정정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오고, 세금에 관한 정치적 싸움을 촉발시키며, 분배에 관한 충돌을 유발한다. 부채를 줄이는 것에 집중하는 정부는 장기적 구조적 변화에 필요한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몇 개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의 선진국의 대부분은 이러한 문제에 빠질 것이다. 브라질, 터키와 같은 많은 신흥국 경제는 최근 공공부채의 증가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의 대출 급증을 막지 못했다. 민간 부문의 부채는 공적 책임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공공부채가 낮다고 해서 생각만큼 안전한 것은 아니다.과도하게 세계 시장과 세계 금융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어온 국가 또한 불리할 것이다. 현재의 세계 경제는 취약해서 대규모의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상황은 좋지 않다. 터키와 같이 경상수지 적자가 막대한 국가는 시장 변동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세계 경제에 휘둘리는 인질이 될 것이다. 중국과 같이 흑자가 큰 국가는 무역보복과 같이 중상주의 정책을 억제하라는 압력을 크게 받을 것이다. 국내 수요 주도의 성장은 수출 주도 성장보다 더 믿을 만한 전략이 될 것이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풍부한 중산층을 가진 국가가 유리하다는 뜻이다.결과적으로 민주주의는 더 발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적 체제가 사라지면서 충돌을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민주주의는 아주 천천히 변화하거나 정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협의와 협동의 장을 만들고, 사회를 동요와 충격으로 몰아갈 수 있는 사회적 집단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사회 주체 간의 양보와 협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역주-인도는 지역 중심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민주주의적 제도가 부족하다면, 분배문제를 두고 일어나는 충돌은 쉽게 사회적 저항이나 동요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나 남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우월한 조건이다. 독재적인 지도자의 통치 속에 있는 아르헨티나와 터키 같은 국가는 향후 세계 경제에서 불리하다.이러한 세 가지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국가는 거의 없는데, 이는 지금 세계에 닥친 새로운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 가장 장대한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경우인 중국도 이 중 한 가지 조건만을 만족한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그나마 브라질, 인도,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원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