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사회적 자본은 “합의된 상호강제 구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라고 했다. 앞서 상호강제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신뢰의 네트워크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네트워크는 개인 간 관계를 보호하고 촉진하기 위한 소통 채널 구조이다. 일종의 통로이다. 이 통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나누면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공동체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가족처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부터 자발적 조직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에 속한 채로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네트워크에 들어가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연결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집단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에는 사람과 시간을 비롯하여 다양한 비용이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네트워크가 확장되어 통로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늘어나지만 이익은 줄어든다. 쉽게 말하자면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친구의 친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의 외부성을 창출하여 유지비용을 상쇄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가 형성되고, 신뢰가 다시 신뢰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이런 장점을 경제모델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본적으로 생산함수는 노동(L)과 물적자본(K)을 투자하여 생산물(Y)을 만들어내는 함수인데, 여기서는 노동 대신에 인적자본(H)을 대입한다. 그리고 생산함수에 영향을 주는 총요소생산성(A)이 있다. 이는 지식이나 기술, 제도의 발전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Y=AF(K,H) (A>0)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총요소생산성이 늘어날수록 생산물의 양은 늘어난다. 이 때 네트워크를 통한 협동은 인적자본이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온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확대되는 범위가 좁아서 협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칠 경우에는 인적자본이 증가할 것이다. 네트워크의 외부성이 경제전체로 확대된다면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지 결국 생산물의 증가로 이어진다. 늘어난 생산물을 다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에 투자하면 더 빠른 성장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실증연구로는 퍼트넘이 이탈리아 20개 행정구역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에서 퍼트넘은 1900년대 초 시민참여지표와 1970년대 초 고용, 소득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시민사회라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의 나라얀(Narayan)과 프리체트(Pritchett)는 탄자니아의 50개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마을의 사회조직에 많이 참여하는 곳일수록 가계의 평균 1인당 소득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네트워크의 문제점 : 배제성과 불평등하지만 네트워크로 구성된 사회적 자본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네트워크에서의 활동은 구성원 사이에 유대, 애정을 형성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 때로는 이런 정체성이 네트워크를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정 네트워크에서 편안함과 이익을 얻을수록 배타적이기 쉽다. 이를 잠김효과(Lock-in effect)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소속될 수밖에 없는 가족, 민족, 인종 등의 네트워크나 종교적 네트워크의 경우 특히 잠김효과가 나타난다. 이런 특수한 네트워크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협동의 네트워크에는 언제나 잠김효과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또한 협동하는 네트워크라 해도 그 내부에 불평등과 착취가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매킨(Mckean)은 지역 엘리트들이 공동체가 소유한 자원의 이익을 부적절하게 획득하고 있는 사례를 밝혔다. 이 외에도 많은 실증연구들에서 협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의 불평등이 나타났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 상태일 때에 비하면 협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은 게 사실이지만, 공동체적 관계에서도 착취적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네트워크와 시장공동체적 제도인 네트워크와 달리 시장은 익명의 교환이다. 모든 사회는 비인격적 시장과 공동체적 제도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보완적이어서 함께 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적이어서 서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와 시장이 보완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네트워크를 통한 상품의 생산과 교환은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경제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왔던 지점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바로 내부의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비용 감소라는 것이다. 기업 내의 교환은 기업 간의 관계와는 달리 공동체적 네트워크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기업 간의 관계에서도 공동체적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파월(Powell)과 브랜틀리(Brantley)는 바이오산업에서 경쟁기업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비밀로 유지하는 정보도 있었다. 공개와 비밀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존재했다. 만약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자는 배제당했다. 경영자들 역시 이런 정보 공유의 네트워크를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이를 장려했다. 정보의 공유를 통해 기술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네트워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반면 시장과 네트워크가 대체재라면 둘은 적대적이다. 시장이 공동체적 제도를 대체하는 경우 반드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네트워크가 시장의 원활한 작용이나 존재를 방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혈연적 유대가 매우 강력한 전통사회를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개인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기능이 있지만, 개인의 투자동기를 저하시킨다는 부정적 기능도 있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정리하자면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규범이며, 이 규범을 지키기로 구성원들끼리 상호강제하는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현재까지의 모든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흔히 승리의 기쁨을 나눌 때 동료애와 신뢰는 촉진되기 쉽다. 선거에서 승리한다거나 정부가 효과적으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뢰 형성 방식이다. 또한 퍼트넘이 강조한대로 자발적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일반적 신뢰와 협동을 제고한다. 특히 그 자체가 오랜 신뢰와 협동의 결정체인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에서 활동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일반적 신뢰를 높이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도자는 이타적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신뢰의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역사적 집단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신뢰와 협동을 이루어냈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험이 없다. 대신 폭발적 경험의 기억은 생생하다. 87년 민주항쟁, 97년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2002년 월드컵과 그해 대선에서의 노풍, 이후 수많은 촛불집회 등을 겪었다. 이런 경험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제도가 모든 것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 신뢰와 협동까지 제도에 의존하도록 되어서는 안 되지만, 무임승차를 막고 신뢰와 협동의 정체성을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서 네트워크가 배제성과 불평등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내부의 신뢰와 협동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내부의 이견을 억압하고, 외부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유발하는 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공동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사회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거나 진전된 남북관계를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1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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