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기업 편에 설 것인가? 국민들 편에 설 것인가?” 지난달 29일 오바마 대통령 연설의 한 대목을 축약한 것이다. 미국 공화당이 상원에서 에너지산업 세제개편안을 부결시킨 직후의 대응이었다. 세제개편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석유관련 대기업들에 대한 세제지원을 대폭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지금 연말 대선을 앞두고 유가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얼마 전 한국 정부는 유가안정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정유 4사의 독과점 구조에 대한 개선된 문제의식을 피력했다. 알뜰주유소 확대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유 대기업들의 과도한 시장권력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 대책의 핵심이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새로운 시장 참여자로 육성해 경쟁을 촉진한다는 데 있다. 현재 한국 정유 4사의 독과점 구조는 상호 담합과 고도의 수직계열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원유 수입에서 석유제품 생산,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상하류 부문 전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예컨대 정유4사의 시장점유율은 1단계 유통의 99.4%, 2단계 대리점 유통의 82% 그리고 3단계 주유소 유통의 94%에 달한다. 삼성토탈은 1단계 유통의 0.6%, 그것도 일부를 담당할 뿐이다. 한국의 구조에서는 정유 4사가 국제 유가의 급등을 내수 부문에 즉시 전가시킬 수 있어 국제 시장에 종속적인 가격 구조를 가진다는 점도 빼 놓지 않고 지적되어야 한다. 정유 재벌이 이처럼 막강해진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첫째, 정유제품 수출을 위해 자본력을 갖춘 소수 재벌만을 육성했고 둘째, 역시 수출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수십 년간 유지하고 있으며 셋째, 1997년 전면적인 자유화 조치를 통해 대기업 통제 수단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 먼저, 가격결정권이 정부에서 대기업으로 이전되었다. 각종 허가제가 신고제 또는 등록제로 바뀐 이후 자본력을 가진 정유 대기업들은 석유판매업도 장악해 들어갔다. 또한 주유소간 거리제한 완화는 최종 유통 단계의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여기서 잠깐. 삼성토탈이라는 낯선 이름으로부터 우리는 한 가지 역사적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정유 4사의 독과점 구조 개선을 위해 정부가 삼성토탈에 부여한 임무는 0.6%에 불과한 4개 비정유 수입업자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입업자의 몰락은 정부가 추진해 온 규제 완화의 결과였다. 정부의 이번 유가안정대책이 실효성을 조금이라도 거두려면 이러한 규정들이 삼성토탈이라는 비정유 대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다시 전환되어야 한다. 결국 중소업체가 몰락한 상태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삼성 재벌에게 특혜가 주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2월에 파업투표를 가결시킨 화물연대는 최근 총파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가 급등의 일차적인 피해자인 운송노동자들의 처지가 막다른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를 보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과제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제들은 재벌의 과도한 권력을 제어하는 것에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