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로 찾아온 강정마을

By | 2012-04-24T09:48:16+00:00 2012.04.24.|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주도 강정 마을에서 무료진료를 하였다. 해군기지 반대라는 오랜 싸움에 지쳐가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연대 투쟁을 위해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힘이 될 일을 찾던 중 거기에 가서 진료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서의 무료진료 일정을 마친 이후에도 나는 가끔씩 진료실로 찾아오는 강정과 맞닥뜨리고 있다.다쳐서 찾아오는 강정 활동가들가끔씩 격렬한 싸움 끝에 다쳐서, 제주시에 있는 내 진료실까지 오는 분들이 있다. 주로 진단서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프랑스인 벤자민(Benjamain Monnet)도 몸싸움을 하다가 여기저기 멍이 들고 허리며 가슴팍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찾아왔었다. 나는 여기저기 자세히 살피고 물어보면서 합당한 진단서를 써줬다. 벤자민은 그 덕분에 강제출국을 모면했다고 한다. 우리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갔어도 같은 진단서가 나왔겠지만, 굳이 나를 찾아온 것은 강정마을에서 무료진료를 통해 쌓인 신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몇 달 뒤에 연락이 왔다. 벤자민이 또 다쳐서 치료하고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외상이 있거나 급히 치료해야 할 내용은 아닌 것 같아 근처 병원에 가서도 같은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고, 서귀포에서 먼 제주시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 후 뉴스를 보니 벤자민은 강제출국을 피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나는 한참 고민에 빠졌다. 그 때 진단서를 제출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제출했는데 안 통했던 것인지….. 자책감이 들면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진단서 작성은 의사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거짓으로 작성할 수 없다. 벤자민이 다른 병원을 갔었어도 정당한 진료와 진단서를 얻을 것이지만, 나에게 연락 온 며칠 후 그렇게 되어 마음이 안 좋았다.또 얼마 안지나 이번에는 경찰들과 함께 강정 마을 여성 활동가가 찾아왔다. 경찰서에 연행되었는데, 진료실에 여자 경찰관 입회 속에 진료를 하게 되었다. 나는 강정에서 그 분을 자주 봤는데, 그 분은 나를 못 알아봤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고, 객관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었다.“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많이 힘들어요.”“뼈는 이상이 없는데, 무릎관절이 크게 무리가 가서 당분간 아플 겁니다.”“손목도 아프고, 여기저기 쑤시네요.”전형적인 몸싸움 후유증으로 밟히거나 거센 힘에 밀쳐져서 나타나는 통증들이었다. 이번에도 필요한 진단서를 작성해 주고는 당분간 쉬면서 지내고, 약을 좀 드시라고 권했다. 진료실을 나갈 때는 여자 경찰관이 안 보이도록 하면서 열심히 싸워서 이기라고 손을 들어 보이며 파이팅 하는 동작을 보여줬다. 그 분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는 힘없이 웃으면서 진료실을 나갔다.잠시 후 동행한 경찰관이 다시 들어와서는 상태가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본 그대로 말해주었다.“이 사람들은 멀쩡한데도 괜히 아프다고 엄살을 떨어요. 옛날 같았으면 진짜 아픈 맛을 보여줬을 텐데, 요즘은 인권이다 뭐다 해서 바쁜데 병원까지 모셔 와야 하니, 원…..”“실제로 근육통이나 인대 통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짜증나겠지만 잘 해 주세요.”경찰관과 해경도 아프다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뭐라고? 당신 같은 경찰관에게 밥 먹여주는 세금이 아깝다’ 하면서 싸웠으면 좋겠지만, 경찰관도 달래면서 화를 풀어주어야지 어쩌겠는가. 강정마을의 갈등이 진료실 안으로 옮겨온 참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경찰관들이나 해경들도 부쩍 많이 찾아온다. 많은 수가 강정에 파견 갔다 오는 사람들인데, 이번 겨울에 심하게 돌았던 독감이나 감기에 걸려서 찾아온 경우들이었다. 의사로서 요즘 무리를 한 것이 있냐는 의례적 질문을 하게 되고, 그들은 한결같이 강정에서 추위에 떨다가 독감이나 감기에 걸렸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 니들도 고생이 많다. 그러게 왜 거기에 갔냐 말이다. 하긴 위에서 지시한 것이니까 가지만…..’이런 경우도 있다. 어느 국가 공무원(경찰관인지 해경인지 해군인지 밝히지 않겠음)이 찾아와서 강정에 가서 오래 있어야 하는데, 며칠 쉬고 싶다고 진단서를 써달란다. 감기 몸살은 있었지만,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피해서 진단서를 써달라니까 속으로는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한 명이라도 그 쪽으로 못 가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안정가료를 위해 며칠 푹 쉬어야 한다면서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계속 강정을 만나고 있다이렇듯 한라산 너머 강정이 우리 병원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계속 강정을 만나고 있다. 그 만남의 상대들이 강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건 그들을 막으려는 해경이나 경찰관이든 말이다.평화로운 섬에 사람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피비린내를 진동시킨 것이 20세기 중반 4?3의 슬픔이라면, 21세기에도 제주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군기지나 해군기지와 같은 전쟁의 광기로 고통 받고 있다. 도대체 이 싸움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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