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재벌개혁, ‘기업집단법’ 제정이 대안이다”

By | 2012-04-12T10:54:02+00:00 2012.04.12.|

‘재벌 개편’ 법적 틀 제시권한과 책임 명문화해야독과점 규제 가능케 되고주주·노동자 권리도 보장막상 총선에서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하고 누그러졌지만 재벌개혁이 절박하다는 문제의식은 정치권이나 학계, 시민사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넓은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지금 어떤 개혁이 필요하고 어떤 개혁 수단이 동원되어야 하는지는 백인백색이다. 2009년에 폐지된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부활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순환출자 금지 같은 새로운 사전규제 장치를 동원하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재벌과 총수일가의 범법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고 편법 증여를 막는 것이 긴요하다는 주장과 원-하청 불공정 거래가 가장 시급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조금 호흡을 길게 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재벌개혁 논쟁을 파악해 보자.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구축되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큰 틀의 재벌규제 체제는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 동안 점차 약화되고 대신 시장 자율이나 자본시장을 통한 견제에 맡겨지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장의 자율적 조정능력이나 자본시장에서의 소수 주주권 강화 방식만으로는 재벌 집단이 적절히 견제되지 못했다. 오히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정도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그 결과 지금은 재벌의 독점적 횡포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마땅한 사회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규율의 공백상태에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마저 친기업정책을 내걸면서 지난 4년 동안 유통 재벌은 골목상권을 휩쓸고, 석유·통신재벌은 독과점 가격을 밀어붙였다. 전자와 자동차 재벌은 하청단가를 깎아 거대한 수익을 달성하는 등 국민경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포식자로 커져버렸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재벌개혁이 새롭게 국민적 의제로 부상한 배경이다.지금은 한두 가지 수단으로 재벌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한국 경제를 내다보면서 규제 공백상태에 있는 재벌을 어떤 제도적 틀로 규율해나갈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학계 등에서 그동안 간간이 나왔던 ‘기업집단법’ 제정 주장은 이미 한국 경제의 중심에 착근되어 버린 재벌체제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성문법적 틀 안에서 규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어 현재의 시점에서 적합한 대안일 수 있다.기업집단법은 개별 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실체’라는 점을 상법 차원에서 인정하고, 그 존재와 구성 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현실적 실체이면서도 법적 규정이 없었던 기업집단과 기업집단을 이루고 있는 계열 회사들 사이의 지분관계는 물론 통제 권한과 책임 범위, 구조조정본부 같은 기업집단 전체의 지휘통제 구조를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나아가 전체 기업집단과 소속 기업 사이의 이해 상충 관계를 규율하며, 이른바 내부 거래 허용범위 등도 규정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합의한 재벌체제의 구조 개편 방향을 법적 틀로 제시하게 될 것이다.물론 재벌과 관련해 제기돼온 여러 쟁점이 정리되어 기업집단법에 종합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므로 경제학계와 법학계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고 현실 경제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규제의 공백상태를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의 시급성도 있다. 출총제를 부활시켜서라도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재벌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공정거래법에, 기업집단법에 포함될 주요 맥락들이 있는 상황이고 추가적으로 어떤 규율이 필요한지도 알려져 있다. 의지만 있다면 19대 국회가 구성되면 곧바로 논의에 들어가고 법률 제정을 서두를 수 있는 것이다.한 가지 확인해둘 것은 기업집단법이 어떤 측면에서는 재벌 인정법이지 반재벌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재벌 규제법과 동시에 공정거래법의 전면 재개정이 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 독일은 주식회사법에 콘체른 규정을 삽입했던 1965년 이전(1958년)에 경쟁제한방지법(GWB)을 제정하여 독과점 규제를 하고 있다. 나아가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편화시킨 1976년의 공동결정법이 기업집단에 대한 노동자의 견제 수단으로 존재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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