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5대 재벌의 자산규모는 230조 원에서 620조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고 순이익은 4배 증가했다. 기업 일반으로 보아도 2000년에서 2010년까지 기업소득은 연평균 25.5%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5.7%에 불과했고, 수많은 집이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재벌을 필두로 기업은 나날이 살찌는데 왜 국민은 가난해질까?분배 악화의 정점에 재벌이 있다. 일부 재벌은 관료와 검찰 및 사법부마저 장악해서 국민경제 전체를 ‘약탈적 공생관계’로 몰아넣었다. 이미 오래 전에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경지에 오른 재벌의 위기는 곧 시스템 위기를 불러오므로 약탈을 당하면서도 재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와 같이 재벌이 지배주주의 이익만 극대화한다면 사회의 양극화가 격심해지고 국가 전체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지난 10여년 경제개혁연대 등은 주주이론(shareholder theory·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임금과 이자, 지대 등을 뺀 나머지는 주주의 몫이다)에 입각한 소액주주운동으로 재벌의 횡포를 견제했다.기업총수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약탈하는 것(tunnelling)을 막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제, 이중소송제,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한 것은 분명 혁혁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상호출자제한 기업규모의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통해 재벌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이제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전체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주주보다 훨씬 더 고통을 받는 노동자, 하청기업(공급기업), 지역주민, 그리고 소비자가 모두 이해관계자이다.주류경제학과 기업가들은 이익 극대화의 방정식이 복잡해지므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종업원지주제와 이윤공유가 경영참여와 결합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증거는 주주자본주의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프리먼의 공유자본주의론). 또 애컬로프의 ‘선물로서의 임금’ 이론을 잇는 행동경제학은 이해관계자가 이익과 위험을 공유할 때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롤즈의 정의론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현재 가장 손해를 보고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물론 이론적으로 그렇다 해서 사회적으로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주주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모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empowerment). 10%라는 미미한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고, 무엇보다도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건설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하며, 하청기업은 납품단가의 공동교섭권을 가져야 한다. 지역주민 역시 위원회의 형태로 자신의 의사를 경영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의 권리도 강화해야 하는데, 특히 금융부문에서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가 절실하다.둘째로는 이익공유의 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와 하청기업, 그리고 지역주민이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며 재벌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이윤공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처럼 주민과 기업이 모두 참여하여 지역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 기금은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서비스와 같은 친밀노동을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지역특화산업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셋째로는 재벌의 비대화는 시스템 위기를 불러일으키므로 사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산분리, 2002년 수준의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제한 등은 미숙한 3세 총수의 판단 오류로 빚어질 수 있는 시스템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범주의 정책을 모두 포괄하는 가칭 ‘기업집단법’이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