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T 선도기업 애플이 주주들을 위해 그동안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향후 3년간 약 50조원(450억달러)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애플의 현금창고에 100조원(976억 달러)가량이 쌓여 있어 더 이상 그대로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란다. 과연 명성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낸 결과다. 미국이 정보통신 첨단기술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애플이 이를 대표한다고 자랑할 법하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됐건만 애플을 칭찬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금융위기로 파산해 국유화까지 됐던던 GM과 같은 자동차산업을 띄우는 분위기가 눈에 띈다. 올해 1월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돌아왔다”고 반겼던 것이 그 사례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에 의하면 2007년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을 100이라고 봤을 때, GM 파산 시점인 2009년 6월의 생산량은 48로 반 토막 났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파산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이 수치가 84까지 올라왔다. 투입된 공적자금을 감안하면 객관적으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회복 수준이지만, 어쨌든 이 정도를 가지고도 미국 정가에서는 미국 자동차산업이 부활하고 있다며 환호성을 올리고 이것이 대선 정국의 이슈가 될 정도다.매번 예상을 뛰어넘어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첨단기업 애플보다,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전통적인 굴뚝산업 GM이 대선 시점에서 더욱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고용’ 때문이다. 올해 접어들면서 미국 더블 딥 위험도가 상당히 누그러졌고 지난해까지 9% 넘게 유지되던 실업률도 8.3%대로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2월 고용률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58.6%다. 2009년 8월 58%대로 떨어진 이후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미국 고용률은 63% 수준이었다. 미국 대선에서 고용 문제가 최대의 사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산업 분야에서 지식기반 경제를 강조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대다수 선진국들은 주요 제조업기반을 해외로 아웃소싱하게 된다. 정보통신 기술혁신을 배경으로 지식기반 서비스업 중점 육성이라는 호소력 있는 논리도 있었지만, 어쩌면 임금비용 절감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단기 수익추구 논리가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싼 임금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남미 등지로 공장을 이전하는 해외투자를 단행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글로벌 생산체계가 확립됐다. 그 전형이 애플이다. 애플의 본사는 물론 미국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기획과 설계라고 하는 앞단과, OS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마케팅과 영업이라고 하는 뒷단은 미국 본사에서 지휘하고 작업한다. 그러나 수십만 명이 투입돼 실제 기기를 생산해 내는 제조는 중국 선전공장에서 중국 노동자들이 만들고 그 공장 주인은 대만 기업 팍스콘이다. 과도한 노동으로 자살행렬이 언론에 계속 보도됐던 그 기업이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독일은 부품을 제공한다. 미국 본사에는 핵심 공정과 핵심인력만 남기고 생산공정을 중국에 아웃소싱한 결과, 애플은 100조원대의 현금보유를 쌓아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배당을 해 주고 있지만 막상 미국 실업률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기업의 수익률 극대화가 그 나라 국민경제의 이익과 합치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휴대폰 가운데 국내생산 비중이 21.6%라고 한다. 5대 중에 4대는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노동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2007년까지만 해도 국내생산이 64.1%였지만 매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9천74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대수 기준으로 애플을 따돌렸지만, 10대 가운데 1대만이 한국 구미공장에서 생산한 것이었다. 때문에 구미공장 노동자수는 몇 년째 1만명을 넘지 않고 있다.사실 첨단산업이라고 부르던, 아니면 지식기반 경제라고 부르던 단지 일부분의 업무공정만이 첨단지식이 동원되고 대부분은 일반적이거나 단순한 업무들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이들 단순 일반 업무들이 모두 기계화·자동화되는 것도 아니다. 기술발전 정도나 지식사회 정도에 따라 비중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대체로 첨단지식과 일반지식, 복잡한 업무와 단순한 업무, 인력 투입과 기계화가 함께 어우러져서 종합적인 업무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이 생산의 일반 전형일 것이다. 그런데 첨단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임금비용을 낮추기 위해 글로벌 해외 아웃소싱을 단행하고, 이를 탈산업화라든지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행이라고 포장하지 않았는가. 공장을 개발도상국가에 옮겨 놓고, 공장이 없는 탈산업화를 이룩했다고 자화자찬하지 않았는가. 그 허구가 세계 경제위기 와중에 고용문제로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 “재산업화”, 아웃소싱에 대비되는 “인소싱(Insourcing)”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한창인 모양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