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의 기고 전문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린 “불평등의 덫(The Inequality Trap)”이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한다. 글을 쓴 케말 데르비스(Kemal Dervis)는 전 터키 재무장관이자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총장, 세계은행 부총재로 현재는 브루킹스 연구소 부소장이다. 불평등은 더 이상 참신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지난 30여년 간 전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와 함께 불평등도 우리 사회와 삶 곳곳에 스며들어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개인 간 능력의 차이로 인해 자본주의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보았다면, 지금은 세계 경기침체의 근원이자 새로운 체제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주목하고 있다. 1%의 99%의 전선이 부각되고 있다.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에 의하면 1952년부터 1986년까지는 미국의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0분의 1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후 1980년대 중반부터 점차 증가하더니 금융위기 직전 2007년에는 전체 소득의 18.3%를 차지하게 되었다. 소득 집중도가 이와 비슷하게 나타났던 때가 또 있었는데 바로 대공황 직전인 1929년에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이 18.4%를 기록했었다. 대공황과 금융위기가 직전에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될 공통점이다.아래 글에서 케말 데르비스(Kemal Dervis)는 소득 불평등이 해소되어 저소득층에게 적절한 소득이 배분되어야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야 광범위한 민간 수요가 창출되며, 민간 수요가 존재한다면 공공부채를 줄여도 경기침체가 일어나지 않으며, 투자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교수를 대표로 하는 기타 경제학자들의 주장도 소개하고 있다. 라잔 교수는 자신의 저서 ‘폴트라인(Fault Line)’에서 불평등의 심화와 이에 대해 신용거품으로 대처한 정부 정책이 금융위기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참고로 그의 저서에 담긴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술진보가 일어나면서 숙련노동자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증가했고,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심화되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가난한 사람들과 비숙련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단시간에 하위층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손쉬운 방법으로 신용 창출을 택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라잔 교수는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이전에는 은행들이 쳐다보지도 않던 하위층에 대해서까지 대출이 확산된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가 연방주택저당회사 패니 매이(Fannie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이 하위층에게 더 많은 대출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지적한다. 저소득층 임대주택, 대출부적격자에 대한 보증 지침, 불입금을 낮춘 새로운 모기지 상품들은 모두 공공 정책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 결과 전체 모기지 상품 중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기에 약 4%였던 것이 금융위기 직전에는 사상 최고치인 15%를 기록했다. 이후 엄청난 집값 폭등이 일어났고, 거품이 터지면서 금융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1%에 집중된 부를 99%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1%의 탐욕에는 규제를 가하고, 99%의 호주머니는 채울 수 있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 세계 각국 정부기 경기침체를 우려하면서도 이 간단한 대책을 실행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불평등의 덫(The Inequality Trap)2012년 3월 8일케말 데르비스(Kemal Dervis)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소득 불평등이 세계 곳곳에서 심화되면서 학계와 정치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1970년대의 두 배로, GDP 8%에서 최근 20% 가까이 증가했다. 불평등의 원인은 윤리적, 사회적 요인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것들은 거시경제 정책과 관련이 있다.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거시경제 정책으로 인한 불평등이 많이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유효수요의 상습적인 위기를 유발한다. 소득이 일부에게 집중되면 과잉 저축이 일어난다. 부자가 될수록 많이 저축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수요를 찾기 위해 해외로 진출해야 하고 이는 “무역 전쟁”을 일으킨다.IMF 수석경제학자로 일했던 시카고대학교의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교수는 최근 발표한 그의 책 ‘폴트라인(Fault Line)’에서 2008년 금융위기와 소득 불평등의 관계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한다.라잔은 미국 상위층에 대한 심각한 소득 집중도가 중하위 소득층에게 지속불가능한 대출을 권장하도록 만들었으며, 이를 위해 주택 부문에서의 보조금과 대출 보장, 통화팽창정책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신용카드 부채 폭발도 있었다. 이런 요인들은 소비를 방해하고, 더 깊은 부채로 빠지게 만든다. 금융의 공격적인 중개방식을 통해 고소득층은 간접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준 셈이다. 이는 지속불가능한 방식이며, 2008년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각각 자신들의 책 ‘끝나지 않은 추락(Freefall)’과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shock)’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마이클 쿰호프(Michael Kumhof)와 로맹 랑시에르(Romain Ranciere)는 소득 집중도와 금융위기의 관계에 대해 수학을 통해 설명한다. 근본이 되는 모델은 다르지만 케인지안 역시 소득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투자보다 지나치게 과잉된 저축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거시경제정책에서는 재정지출과 저금리를 통해 경기 회복을 하고자 한다. 수출에 유리하도록 고환율 정책도 쓴다. 하지만 고소득층의 비중이 높아진다면 문제는 만성적으로 남는다. 게다가 공공부채가 적자지출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거나 이미 금리가 0%에 가깝다면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이런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보이는 현실과 반대되는 측면이 있다. 지금 미국은 저축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 문제인 게 아닐까?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본다면 유효수요가 적은 게 아니라 과잉 소비가 문제인 게 아닐까? 높은 고용수준과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 모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최고소득층이 다른 모든 이들의 수요에 자금을 공급해준 것이다. 과도한 소득 집중도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대출을 해줄 수 없다. 신용거품과 붕괴가 다시 발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다른 문제가 생긴다. 기업들은 불충분한 수요를 언급하면서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계속 상위층에 집중된다면 어떻게 국내 수요가 강화될 수 있겠는가? 2012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은 통화팽창정책과 지속불가능한 재정정책에 의지하고 있다. 소득집중도가 줄어든다면, 광범위한 민간 소득을 통해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면 경기침체를 우려하지 않고 공공부채를 줄일 수 있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면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원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