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가계대출이 줄어들었다. 지난 1월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이 줄었을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들의 대출도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2009년 1월 이후 처음이라 언론매체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물론 2월 통계까지 나와 있는 시중은행의 경우 2월에는 다시 대출이 약간 올랐다. 그러나 매달 2조원 이상 대출이 늘던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의 증가다. 그리고 카드사나 할부금융 통계는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큰 흐름에서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한국경제의 잠재적 시한폭탄이라고 우려가 컸던 지점이 바로 1천조원 규모의 가계부채가 아니던가.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으면서 모조리 가계부채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줄지 않아서 더 걱정이 많았던 것 아닌가. 더욱이 가계부채 감소가 부동산 경기하락의 영향을 받아서 발생하고 있다니 그 역시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 경제에서 서로 맞물리면서 연착륙을 해야 할 대상이 가계부채와 주택가격이 아니던가.그런데 가계부채 감소를 보도하는 매체들의 태도가 탐탁지 않다는 어투다. 만일 은행들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온 국민이 우리경제의 안정을 위해 가계부채 감소를 바라고 있는 와중에서도 은행들에게는 가계부채 감소가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왜 그런가. 매출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매출이 감소하면 수익이 감소하는데 어떤 영리기업이 박수를 칠 수 있단 말인가. 은행에게 ‘대출은 곧 매출’이다.사실 지난해까지도 시중은행들은 매월 2조~3조원의 가계대출을 늘려 왔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지난해까지 연 평균 8% 이상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경제성장률을 훨씬 초과해서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뒤집어 말하면 금융회사들은 평균 성장률 이상의 매출실적을 올렸고 그만큼의 수익을 달성한 것이다. 때문에 가계부채 사상 최고 기록은 곧 은행수익 사상 최고 달성과 같은 말처럼 간주됐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부채는 1천조원을 넘었는데, 은행이 달성한 수익 12조원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대였다.이런 은행들에게 가계대출 감소는 곧 매출 감소이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실제로 은행 관계자들은 올해 가계대출이 최소 4%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그동안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에서 수익을 봤던 은행들은 가계대출이 주춤하니 성장성과 수익성 면에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다가 은행이라는 사적 회사의 이익과 국민경제의 이익이 이처럼 정면으로 배치되게 됐을까. 왜 시장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전체가 이익을 보지 못하는 구조가 됐을까. 은행이 공적 금융기관이 아니라 사적 회사가 됐기 때문은 아닌가. 은행이 사적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자금 재분배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었다면 이런 이익의 충돌은 없지 않을까.이 시점에서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대출이 줄어든다고 하니 서민 핑계를 대면서 서민들의 자금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출을 줄이면 안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금융회사들이 서민대출을 줄이면 서민경제가 급속히 악화되는 악순환이 야기될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주장 자체는 맞는 측면이 있다. 분명히 경기가 나빠지고 각 가정과 자영업자들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질 때 은행이 대출창구를 조이면 서민과 중산층들이 힘들어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가계부채 축소는 언제 어느 세월에 할 수 있는 것일까.사실 정부가 대출 통제를 하지 않더라도 경기가 위축되고 유동성 흐름이 막히는 시점에서는 은행들 스스로가 자금회수에 나서는 것이 오늘날의 자유화되고 개방된 금융시스템 구조다. 경기가 매우 나쁘고 자금회수가 의심됨에도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고 있다면, 각종 담보 요구를 까다롭게하거나 리스크를 상쇄할 다른 대책을 세울 경우에 한한다. 은행들이 리스크를 금융소비자들에게 떠넘기면서 수익률은 보존하기 위한 행태들을 부쩍 늘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일제히 올리면서 신용대출 금리가 한 달 사이에 무려 1%포인트 이상 상승해서 7%를 넘어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출을 유지한다는 것은 은행의 매출과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서민들의 자금수요를 절대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명확하다. 정부가 금융회사들에게 대출을 줄이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불법·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온갖 금융리스크를 가계와 대출자에게 넘기고 있지 않은지 철저히 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