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사회적 딜레마 게임 2 : 사슴사냥 게임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이 게임은 확신게임(Assurance Game), 신뢰게임(Trust Dilemma)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A Discourse on Inequality)>에서 나온 우화에서 비롯되었다.상황은 이렇다.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사냥꾼이 힘을 합쳐 자신이 맡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냥꾼만으로도 충분하다. 토끼를 사냥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사슴을 사냥할 때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사냥꾼 A와 B가 함께 사슴을 사냥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맡은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 때 토끼를 잡으러 쫓아가야 할까? 아니면 사슴을 잡기 위해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사냥꾼 A와 B의 전략은 ‘사슴을 잡는다’와 ‘토끼를 잡는다’ 두 가지가 된다. 사슴을 잡기로 했다면 서로 협력(cooperation)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C로 표시하고, 토끼를 잡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배반(defect)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D로 표시한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사슴을 잡았을 경우는 (4,4),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토끼를 잡았을 경우는 (2,2), A는 사슴을 기다렸으나 B가 토끼를 쫓아가버린 경우는 (1,3), A가 토끼를 쫓아가버리고 B는 사슴을 기다린 경우는 (3,1)이 된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4를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3을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도 협력한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는 협력하면 1을 얻는다. 반면 A도 배반하면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 A도 배반한다. 즉,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상대방이 사슴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킨다면 나도 그래야 하고,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나도 그래야 한다. (4,4)와 (2,2) 둘 다 내쉬균형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인 경우의 게임을 조정게임(Coordinatioin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4,4)가 (2,2)보다 훨씬 이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슴을 기다릴 경우 얻을 이득은 4 또는 1이다. 상대방도 사슴을 기다린다면 4를 얻지만 만약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1밖에 못 얻는다. 반면 토끼를 쫓아갈 경우 얻을 이득 3 또는 2이다. 운이 나빠도 2는 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토끼를 쫓아가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사슴사냥게임이 갖는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U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사슴사냥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U자를 그린다. 파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사슴사냥게임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집단행동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다. 사장 한 명과 직원 두 명이 있는 직장이 있다. 사장은 권위주의적이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어느 날 두 명의 직원은 휴가를 제 때에 보장받기 위해서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파업이 성공하면 사장은 휴가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두 명의 직원 중 한 명이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 보장의 요구는 묵살되고, 이를 주장한 직원은 불이익을 받는다. 물론 두 직원 모두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두 직원을 A와 B라고 하자.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파업에 참여한다’와 ‘파업에 불참한다’ 두 가지가 된다. 파업에 참여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고, 파업에 불참한다면 서로 배반하는 것이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파업에 성공하고 휴가를 보장받았을 경우는 (1,1),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파업에 불참하고 휴가를 보장받지 못했을 경우는 (0,0), A는 파업에 참여했으나 B는 불참하여 A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1,0), A는 파업에 불참했으나 B는 참여하여 B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0,-1)이 된다. B가 파업에 참여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도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참여하는 게 이득이다. B가 파업에 불참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는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불참하는 게 이득이다. (1,1)과 (0,0) 둘 다 내쉬균형이 된다. 즉, 상대방이 파업에 참여하면 나도 참여해서 휴가를 따내는 것이 이득이고 상대방이 파업에 불참하면 나도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이득이다. 탐욕이 사라진 게임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을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협력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반하는 것과 상대방이 배반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도 배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전자가 탐욕(greed)이라면, 후자는 공포(fear)다. 사슴사냥게임에서는 적어도 탐욕으로 인한 배반은 사라진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사슴사냥게임이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을 배신하는 경우는 남이 나를 배신할까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바꿀 수만 있다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다. 적어도 탐욕에 의해서 나만 잘 살겠다는 선택과 그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는 결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했을 때는 남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일단 우리 아이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남들이 사교육 안 시킨다면 나도 안 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사교육 비용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고생하고 그런데 성적은 안 오르는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부모들이 많아진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교육은 이제 사슴사냥게임으로 변한다. 남이 사교육을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시키지만, 즉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지만 남이 사교육을 안 시키면 나도 안 시키겠다, 즉 남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2,2)라는 해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4,4)와 (2,2)이라는 두 가지 대안이 생겼다. 물론 이 두 가지 대안 중 서로 협력하는 (4,4)를 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나는 사교육을 안 시키고 싶은데 남들도 안 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키는 (2,2)의 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모두가 사교육을 안 시킬 것이라고, 모두가 협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방법을 들자면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된다. 적절한 제도와 규범을 도입한다면, 죄수의 딜레마는 사슴사냥게임으로 바뀔 수 있고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해를 택할 수 있다.사회적 딜레마 게임 3 : 치킨게임세 번째는 치킨게임이다. 치킨은 겁쟁이를 뜻하는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이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나오는 한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에서 두 건달이 여주인공을 놓고 게임을 한다. 절벽 위에서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다가 둘 중 먼저 차를 세운 사람이 지는 것이다. 누가 겁쟁이인지 보자는 무식한 게임이다. 또는 서로를 향해 차를 몰다가 누가 먼저 핸들을 돌리는가, 기찻길 위에 누워 있다가 누가 먼저 도망가는가를 겨루는 것들도 모두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은 매-비둘기 게임(Hawk-Dove Game)으로도 불린다. 매는 돌진하는 미친놈이고, 비둘기는 도망가는 겁쟁이다. 매와 비둘기가 만나면 언제나 매가 이긴다. 하지만 매와 매가 만나면 서로 멸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여기 치킨게임에 참가한 무식한 사람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선택한 게임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아 달려오는 것이다. 전략은 ‘핸들을 돌린다’와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가 있다.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협력(C)이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것이 배반(D)이다. 보수는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달리는 경우, 결국 둘 다 죽는 경우가 (1,1)이다.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는 경우는 둘 다 목숨은 건졌지만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3,3)이다. A가 핸들을 돌리고, B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2,4), B가 핸들을 돌리고 A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4,2)이다.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가 되었으니 2의 보수를 얻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게임에서 이겨 용감한 남자로 인정받았으니 4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보자. B가 협력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3을 얻고, 배반하면 4를 얻는다. 따라서 A는 배반하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B가 배반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2를 얻고, 배반하면 1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협력하고 핸들을 돌린다. 남이 협력하면 나는 배반하고, 남이 배반하면 나는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B가 핸들을 돌릴 것 같으면 A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해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B가 너무 무식한 놈이어서 절대 핸들을 돌릴 것 같지 않다면 A는 핸들을 돌려서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다. 이처럼 상대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이 되는 게임을 반조정게임(Anti-Coordination Game)이라고 한다. 앞서 본 사슴사냥게임과 정반대이다. 사슴사냥게임에 해당하는 경우는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과 내가 같은 것을 선택할수록 나눠 갖는 몫이 커진다. 혼자서 토끼를 잡는 것보다 둘이서 사슴을 잡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즉, 재화의 비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치킨게임은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하면 내 몫은 줄어든다. 서로 같은 것을 선택해서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재화의 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내쉬균형은 (4,2)와 (2,4)에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둘 중 어떤 놈이 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식한 인간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치킨게임에서는 미친놈이 이긴다고 말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로를 향해 차를 모는 경우라면 나는 핸들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핸들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자신의 손을 묶어서, 나는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치킨게임의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치킨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의 모양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핵무기 경쟁을 할 당시 미국의 닉슨(Ric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내 전략은 미친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핵무기가 가져올 엄청난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리는 것은 치킨게임과 같다. 그리고 닉슨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인식하면, 다시 말해 나를 언제라도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 바보와 미친놈의 계임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도 치킨게임이다. 여기서 미친놈은 북한이다. 남한 정부도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실제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남한이 이길 것이다. GDP의 차이가 20배 이상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쉽게 미친놈이 될 수 없다. 남한 정부는 미친놈보다는 바보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협력할 것이고, 이 때 너희도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을 주는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의 이득을 제시하여 협력할 때 북한이 얻는 이득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혹은 적어도 협력할 때 이득이 많아진다고 북한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상호주의 전략은 이를 다시 치킨게임으로 되돌려 놓았다. 상호주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협력과 응징이다. 문제는 협력보다는 응징에 방점이 찍혀서 북한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전략만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니 나도 응징을 하겠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방도 다시 나를 응징한다.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협력할 때보다 배반할 때 이득이 더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치킨게임이 되는 것이다.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게임을 이렇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보다.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나은 상황이 사슴사냥게임이다.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협력하는 경우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해결될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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