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새누리 복지공약, 알고 보니 민노당 것 베꼈네” (조선일보, 2012.2.13) 조선일보가 비아냥인지 우국의 한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 만큼 각 당의 다를 바 없는 복지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사실 각 당의 정책이 같은 방향이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불과 4년 전, 17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약 역시 똑같았다. ‘특목고 유치’, ‘뉴타운 유치’를 똑같이 써 넣은, 색깔만 다른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오죽했으면 내가 당시에 “저 빌어먹을 공약” 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겠는가. 하지만 상전이 벽해가 된다고 이번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나만은, 내 아이만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유권자들은 어느 새 우리 아이가 혹여 ‘루저’가 된다 하더라도 인간답게 살만한 복지사회를 원하고 있다.정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있을 수 없다. 이제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려 겉으론 복지를 내세우면서 실제 속마음에 들어있는 정책기조는 복지와 양립할 수 없는 경우만 잡아내면 된다. 예컨대 “(여당 때는) 국익을 위한 FTA를 추진한다고 해 놓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그리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그렇다. 한미 FTA와 복지는 상극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새누리당이 발표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SSM의 지방 중소도시 신규 진출 5년간 금지’ 정책은, 이들 기업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우 한미 FTA 제12장 4조에 걸릴 소지가 다분하다. 내국민 대우 위반만 아니면 된다는 이주영 정책위 의장이나 김종인 비대위원의 말은 그저 무지를 드러낸 것뿐이다. 새누리당이 지금 영입하려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는 한EU FTA 위반이라고 이미 유통법?상생법 통과 때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역시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미 FTA는 이처럼 사실상 초헌법(캐나다 정치학자 클락슨의 표현)의 위치에서 국가의 정책을 제한함으로써 각 당의 복지공약을 무산시킬 수 있다. 캐나다가 1994년 미국과 나프타를 맺은 후, 지니계수로 나타낸 소득불평등 정도가 우리보다도 나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실업수당 등 복지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꾼 결과이다. 복지와 상극인 정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거시경제정책이다. 복지국가의 모범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도 1990년 초에 외환위기를 당했고 이들 국가는 당시 “스웨덴 병”, “북유럽 모델의 사망” 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위기는 ‘공짜 점심’과 같은 미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80년대 내내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정책, 뒤이은 자본시장 개방, 금리자유화와 같은 거시경제정책 때문이었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자산 버블이 일어났고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버블이 꺼지면서 외환위기까지 당한 것이다. 즉 복지를 원한다면 주식이나 부동산 버블을 키워서는 안된다. 따라서 자본의 유입을 제한하는 토빈세나 외환가변유치제 도입, 자산의 버블을 억제하는 주식 양도차익세 부과, 종부세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만일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정책을 고집하거나 자산 버블을 막기 위한 세제나 제도에 반대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 당의 복지공약은 가짜이다. 5년 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줄푸세” 정책기조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한미 FTA는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됐고 당시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이 설득 해왔”으므로 “정권이 바뀌면 없던 일로 한다는 데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정책을 바꾼 이유를 정확히 말해야 하며 그래야 국민들도 납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맞춤형 복지’와 “줄푸세”가 양립할 수 있는지 밝히고 만일 “줄푸세”를 없던 일로 하겠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박대표는 한미 FTA와 복지가 양립가능하다는 것도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이 글은 PD저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