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시장에 모여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 바로 시장경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지금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전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생각해보자. 저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환경 파괴 따위는 모르는 척하는 게 합리적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지구가 망할 것 같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환경 파괴에 따른 비용을 책정하여 시장에서 환경 파괴권을 판매할 수도 있다. 그러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환경 파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 소득도 재산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대출을 권했던 모기지 업체, 파산 위험이 있는 대출을 담보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이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인 사교육과 부동산은 어떠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는 사교육 비용과 부동산 가격은 계속해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 놓는게 옳을까? 그렇다면 무상급식 이후 불었던 복지국가 건설의 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모두가 이기적이라서 제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누가 무상급식을 위한 세금을 내려고 할까? 시장에만 맡긴다면 사회복지 서비스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을까? 시장경제를 적용했을 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와 다른 원리로서 접근해야 한다.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 경제학에는 시장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다른 원리를 가진 경제들이 있다. 이 강연을 통해 우리는 다른 경제에 대해 배울 것이다.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 생태경제의 네박자경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 국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경제, 그리고 그 외에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공동체에 의한 사회경제가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를 구성할 때 필요한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서 시대를 뛰어넘어 세대 간의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방식이 생태경제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이란 구체적인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판매와 구매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서의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가장 효율적인 점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공공경제는 주로 시장 실패 부분을 국가가 어떻게 보완하느냐를 다룬다. 국가는 개인들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다. 세금을 거두고, 법을 만들어 강제하고, 때로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런 권한을 이용해서 국가는 시장에서 분배가 되지 않는 재화를 세금을 통해 재분배한다. 개인들이 조금 더 비슷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 사회분쟁을 줄이고자 한다. 공공경제의 원리는 재분배를 통해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영역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어왔다. 원시 부족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식량공유의 습관이 바로 사회경제이다. 현대에서는 수익성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대표적인 사회경제이다. 사회경제의 원리는 상호성을 통해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장, 국가, 공동체로 나누어 각각 효율, 평등, 연대를 추구하는 영역의 조합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 역시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 재분배, 선물이라는 세 가지 교환양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시장경제는 사회조직의 일부에 불과한데, 사회의 모든 영역을 시장경제의 원리로 일원화한 결과 대공황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의 가치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점도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의 구분과 닮아있다.생태경제는 기존의 환경경제학과 다르다. 환경경제학은 시장실패로 일어나는 환경 문제를 시장원리에 따라 조정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생태경제는 인간이 아닌 자연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경제를 에너지와 물질이 흐르는 생태계의 하부 구조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생태경제의 원리는 생태계의 법칙과 세대 간 정의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앞의 세 경제를 포괄하는 범주이며,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사회는 이처럼 다양한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굴러간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우리는 이 다양한 경제 원리들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각 원리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가?시장경제의 기본전제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점이다. 시장경제에서의 인간은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로 불린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둔다. 또한 뛰어난 정보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말 그럴까? 만약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시장경제가 사회를 운영하는 유일한 원리가 되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상정한 인간의 정의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름하여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두 사람이 있다. 편의를 위해 A와 B로 칭하자. 이제 A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눠가지도록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주고 싶은 만큼 금액을 제시할 수 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은 각각의 금액을 나눠가지고, B가 A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못한다. 당신이 A라면 얼마를 제시하겠는가? 당신이 B라면 A가 얼마를 제시했을 때 제안을 수용하겠는가? 만약 시장경제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 A는 최소한의 금액 1원을 제시할 것이고, B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B의 입장에서는 1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안을 거부하여 1원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A는 1원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들이 동일한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대체적인 결과를 종합해보면 A는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한다. 물론 B는 이 제안을 수용한다. 그리고 A가 2000원 이하의 금액을 제시할 경우 B는 이를 거절하고 한 푼도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시장경제의 예측에서는 한참 벗어난 결과이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인간의 두 가지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남을 생각한다.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내 돈이 아닌 1만원이 생겼을 때, 옆의 사람에게 얼마를 주는 것이 좋을지 배려한다. 그래서 전체 금액의 40% 이상을 나눠주고 있다. 둘째, 인간은 불공평한 행위에 대해서 응징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너무 낮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상대방을 응징하는 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불공평한 행위를 응징하는 인간의 속성을 상호성이라고 한다. 상호성의 핵심은 남이 해주는 대로 나도 행동한다는 것이다. 남이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남이 나한테 잘못하면 나도 잘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상호적 인간, 호모 리시프로칸(Homo-reciprocan)이라 한다. 이런 결과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반박을 했다. 경제학자들은 A가 4000원이나 5000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까닭은 혹시 B가 그 제안을 거절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A의 결정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또 하나의 실험이 진행된다. 독재자게임(Dictator Game)이다. 앞서 진행한 최후통첩게임과 똑같이 진행하되 다만 B가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즉, A는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하고 B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A기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험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역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A는 2000원에서 3000원으로 B에게 나눠주었다. 앞의 최후통첩게임의 결과와 비교해보면 나눠주는 금액이 2000원 정도 줄어들었다. 줄어든 2000원은 경제학자들의 반박처럼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2000원에서 3000원의 금액을 결정권이 없는 사람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남을 생각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상호적이다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이기적인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대체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의 300년 역사 동안 절대적 가치로 이어진 ‘인간은 이기적이다’ 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명제를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시장경제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앞으로 우리가 배울 다른 경제학에서는 이기적 인간이 아닌 상호적 인간을 기본으로 할 것이다. 남이 하는 만큼 나도 베푼다는 가장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인간. 생각해보면 이미 인류의 오랜 고전인 성경과 논어에서도 이를 황금률이라 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만고의 진리를 묻어두고 어째서 이기적 인간이라는 오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마라.” – 논어 12편*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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