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 실린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글 “쇼핑하다가 망할 운명(We are all going to hell in a shopping basket)”을 요약 소개한다. 라이시는 캘리포니아대학교의 공공정책 교수이며 빌 클린턴 대통령의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국내에서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라이시는 자신의 책을 비롯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미 여러 차례 지금 위기의 원인은 소득 불균형에 있음을 주장해왔다. 고소득층으로의 소득 집중은 전체적인 소비성향의 감소를 가져와서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며, 정치적 불안정성을 높여서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아래 글에서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라는 표면적 대립에서 한 발 나아가, 소비자와 투자자 그리고 노동자와 시민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이 추구하는 가치의 대립이 위기의 근원이라고 제기하고 있다. 산업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노동자 또는 자본가로 구분되지 않고 복합적인 역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투자자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저렴한 물건 뒤에 감춰진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파괴에 대해 분노하는 시민이기도 한 것이다. 라이시는 이런 네 가지 역할의 대립 속에서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보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권리만을 좇은 결과가 현재의 위기라고 본다. 우리는 더 저렴한 물건과 더 많은 투자이익을 위해서 더 낮은 임금과 불평등, 환경 파괴, 공공의 도덕 파괴를 선택한 것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탓할 때, 우리 자신부터 잘못된 소비와 투자를 행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네 가지 역할 사이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과 기술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 방법 역시 개별 국가 내에서 머물러서는 안되며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쇼핑하다가 망할 운명(We are all going to hell in a shopping basket)2012년 1월 16일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현재 자본주의의 위기를 세계 금융과 거기서 일하는 임원들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임금 탓으로 돌리는 일은 너무 쉽다. 더 깊이있는 통찰에 의하면 지금의 위기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노동자와 시민을 이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 가지 역할(소비자, 투자자, 노동자, 시민)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소비자와 투자자로서 얻게 되는 효율적인 거래는 증가하는 대신 노동자와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던 능력은 줄어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이다. 현대 기술은 우리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걸쳐, 가장 낮은 가격에,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하여 최고의 이익을 얻게 해준다. 소비자와 투자는 이제까지 갖지 못했던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일자리와 임금, 그리고 불평등의 확산을 대가로 얻은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물건은 낮은 임금을 주는 회사에서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공동체의 핵심인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환경을 파괴한 대가이기도 하다. 발전된 기술은 가난한 국가에서 빈약한 환경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저렴한 물건을 손쉽게 구매하도록 해주었다. 공공의 도덕을 해친 대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저렴한 가격에 높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까닭은 생산자들이 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고용하여 일주일에 7일씩,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나 시민이기도 한 우리들 대부분이 의도적으로 이런 결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이런 결과를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제외한 다른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여전히 그런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개인이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선택을 보류하는 것은 효과도 없으며, 불가능하다. 노동자와 시민으로서의 요구와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법과 규칙은 일자리와 임금, 공동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이 민주적 제도를 훨씬 능가하여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 공동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법은 오직 국경 안에서만 해당된다. 하지만 소비자나 투자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술은 손쉽게 국경을 초월한다. 국가가 그런 거래를 통제하거나 감시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다. 개별 국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환경이다. 환경 파괴는 전 세계적 문제이다. 또한 높은 비용을 피해서 일자리와 사업체를 옮기겠다고 위협을 일삼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법은 간접적으로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더 친기업화 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자금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거래를 위해서 민주적 제도를 훼손하고 있다. 사회적 쟁점에 관해서 기업이 돈을 대주는 홍보, 캠페인, 로비스트의 영향은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를 반영하고자 하는 입법기관, 의회, 감시기구, 국제기구를 뛰어넘는다. 그 결과 소비자와 투자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일자리는 불안정해지고, 불평등이 심화되며, 공동체는 위태로워지고, 기후 변화는 악화되고 있다.전 세계의 금융이나 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갖고 있으며, 전적으로 공모했던 불안정한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비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문 보러가기: 파이낸셜타임스는 로그인을 해야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