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저지르고 자수하면 면책받는 재벌게임

By | 2012-01-26T09:19:55+00:00 2012.01.26.|

“OO와 OO는 OOOO하기 위하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부근과 서초구 인근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정보교환을 하였으며, OOO에 합의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어떤 공문서를 인용한 것이다. 무엇이 연상되는가. 혹시 검찰의 공문서를 봤다면 검찰이 피고인의 범행을 기록한 공소장에서 이와 비슷한 구절이 반복되는 것을 봤을 수 있다. 그렇다. 재벌의 검찰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의 범법행위 중 가격담합행위를 적시한 자료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이제 제대로 다시 인용해 보겠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8년 7월~2009년 2월 기간 중 판촉경쟁 격화에 따른 평판TV 가격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부근과 서초구 인근 식당 등에서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환했으며,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출고가 인상, 장려금 축소 등의 방법으로 평판TV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인상·유지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하였다.”(1월12일자 공정거래위 보도자료) 삼성과 엘지가 평판TV 가격 담합행위를 한 것이다. TV를 포함해 우리 가정에 최소 하나 이상씩 있을 법한 웬만한 가전제품은 거의 모두 삼성 아니면 엘지제품일 것이다. 안 봐도 안다. 어떻게? 통계가 말해 주니까. 수량기준 국내 평판TV 시장 점유율을 보면 2010년 삼성이 49.8%, 엘지가 49.6%이다. 둘이 합쳐 99.4%이니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집의 평판TV가 삼성 아니면 엘지라고 상상하면 거의 틀리지 않다. 가격 담합행위에 세탁기도 걸렸는데 세탁기 점유율도 수량기준으로 삼성과 엘지를 합치면 85%가 넘는다. 냉장고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의 가전시장은 완벽하게 독과점 시장인 것이다. 일반적 상식을 벗어나 지나치게 과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삼성과 엘지는 국내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글로벌 가전업체다. 명성이 있으므로 국내시장 독과점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기업으로 도약했다는 사실과 그 기업이 시장에서 공정한 규칙을 따를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특히 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장악한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인가와 무관하게 독점적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가격을 경직되게 운영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수많은 독과점 시장의 교훈이었다.따라서 독과점 시장은 사전에 그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규제를 할 뿐만 아니라, 사후적으로라도 가격 담합이나 불공정거래의 폐단이 발생하는지 엄격히 감시하고 발견되면 엄정히 징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인 삼성과 엘지가 국민들이 쉽게 찾는 대형 할인점이나 양판점에서 파는 세탁기와 평판TV, 그리고 노트북 PC의 가격을 부당하게 인상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특별히 놀라울 것이 없다. 어쩌면 이 정도밖에 가격 담합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지 모른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위반을 했을 때 내려지는 징벌이 너무 가벼우면 규율효과가 없다. 가격 담합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상의 과징금은 ‘위반 기간 동안 관련 매출액’의 최대 10%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식적으로 두 회사에 대해 446억원의 과징금을 명령했다. 그런데 대략 ‘위반기간 동안 관련 매출액’을 합산(세탁기는 2009년 1년 매출액 6천억원, TV는 2009년 반년 매출액 1조2천억원, 노트북 PC는 2009년 반년 매출액 1조1천억원)해 보면 어림잡아 3조원 정도가 나오니 과징금은 2% 미만으로 부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마저도 담합행위 자진 신고자에 대해 최대 100%까지 과징금을 감면해 주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악용해 버리면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독과점에 의한 담합행위와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자본주의 입장에서 봐도 최대의 범법행위다. 형사적·민사적으로 엄격한 처벌이 있어야 마땅하다. 때문에 관련 매출액의 10분의 1과 같은 가벼운 과징금이 아니라 미국의 반독점법인 클레이튼법에 있는 ‘손해액 3배 배상제도’와 같은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미 지난해 하청업체 기술탈취에 적용됐다.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최근 소비자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에서 별도로 삼성과 엘지에 대해 ‘부당 인상분에 대한 산정금과 개인별 정신적 피해 위자료 50만원씩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추진한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독과점 담합행위에 대한 정당한 절차다. 뒤늦게 공정거래위가 사상 처음으로 소비자단체의 집단소송에 대해 소송비 1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담합행위가 마치 중간관료의 개인적 충정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는 듯, 담합행위를 ‘해사(害社) 행위’로 간주하고 관련 임직원들을 강력 처벌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독과점 문제에 대한 모두의 합의가 있는 셈인데 실제로 얼마나 재발방지가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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