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을 맞으며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툭툭 끊어서 호들갑을 떠는 게 마뜩찮지만 그래도 이런 날이 있어 천성 게으른 사람이 인사를 올릴 수 있는가 봅니다.

임진년, 경제가 어찌 돌아갈지부터 듣고 싶으시겠지요. 매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제 예측이 틀리기를 바랍니다. 6.2% 성장했던 2010년처럼 제가 틀려도 경제가 조금 낫기를 바랍니다. 2012년 경제, 잔뜩 흐림에 폭풍우가 몰아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3.6% 성장을 예측했지만 이는 세계경제가 3% 중반대의 성장을 한다는 낙관 위에 터잡은 겁니다.

하지만 장기침체에 빠져든 미국, 유로화의 존립 자체가 바람 앞에 등불 신세인 유럽, 예년처럼 활기가 없는 일본 등 이른바 ‘거대 선진 경제권’은 제로 성장에 머물 것이고 작은 충격에도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구세주의 역할을 한 중국이 이런 상황에서 9%대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GDP의 35% 가량을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라, 다만 재정이나 금융 면에서 당과 정부의 신속한 수습이 가능한 나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거대 신흥국인 인도는 외채 문제 때문에 훨씬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경제가 그럭저럭 지뢰를 피해 간다 해도 2012년 우리 경제성장율은 2%대에 머물 것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물론 연구원 내에는 3%대의 성장을 예측하는 분도 있어서 지금 의견을 취합해서 정리하는 중입니다). 부동산 버블과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은 이제 초침이 째깍거리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거지요.

문제는 침체 양상이 금년에 머물지 않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세계는 지금 폴라니의 표현대로 “거대한 전환”을 맞고 있습니다. 금융자유화의 시장만능주의의 몰락, 달러의 위기,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유럽의 분열 위기는 한두해에 수습될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곧 닥칠 것으로 보이는 에너지/식량 위기까지 더한다면 앞 날이 캄캄할 수 밖에요. 1929년 대공황이 단 한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5번의 크고 작은 위기로 엮여 있었고 결국 세계대전을 거쳐 1945년이 넘어서야, 즉 16년이나 걸려서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은 그 때보다 더 나쁜지도 모릅니다. 당시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이미 영국을 압도했던 미국이 실제로 패권 국가가 되는데 16년이나 걸렸는데 중국이 당시 미국의 역할을 하리라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작년 아랍에서 시작해서 “월가를 점령하라”까지 터져나온 민중들의 숨가쁜 목소리가 거의 유일한 희망입니다(G20라는 국제공조가 또 하나의 희망인데 작년 이들이 보인 모습은 말 그대로 지리멸렬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과 같은 대참화를 겪지 않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설마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죠ㅠㅠ).

1930년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세계의 대격변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지만, 시민의식으로 본다면, 감히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떠오르는 중국 옆에 있다는 지경학적 위치도 무시할 수 없는 이점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전후의 유럽 복지국가처럼 새로운 사회경제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80년대에 각광을 받았던 일본 모델 역시 노쇠할대로 노쇠했습니다.

저는 아시아 주도의 세계에서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보편적 복지국가” 나아가서 “지속가능한 보편적 복지의 동아시아공동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새사연 회원님들께

마침내 2012년이 밝아옵니다. 새해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입니다.

고백하거니와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사연과 저는 무력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부익부빈익빈이 구조화하면서 정권을 교체하자는 여론은 거셌지만, 진보세력은 대안으로 떠오르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독재와 언론권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뿌려놓은 경제 성장의 환상은 기어이 이명박을 대통령 자리에 앉혔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은 결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며 수십여 편의 글을 이곳에도 올렸습니다만,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새사연 이사회에서 저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중운동이 오히려 살아날 가능성을 강조하고 5년 뒤 진보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데 무기가 될 대안을 치밀하게 벼려가자고 당부했었습니다. 지난 5년 새해를 맞을 때마다 ‘노동중심경제와 통일민족경제’의 학습을, 새로운 사회의 꿈과 그 나눔을, ‘주권혁명’을 호소해온 까닭이기도 합니다.

새사연 회원 여러분. 1년 전 저는 신년사에서 두 가지 확고한 전망을 보고 드렸습니다.

첫째, 진보적 경제학자로서 눈부신 활동을 벌여온 정태인씨를 원장으로 초빙한 사실을 알려드리며 정태인-김병권 체제가 기존의 상근 연구진과 더불어 새사연의 내일을 괄목상대할 만큼 키워 나가리라 확신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새사연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가 선정하는 국내 싱크탱크 순위에서 5위로 올라섰습니다. 저희가 그에 값하는 연구 성과를 내놓고 또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가를 겸손하게 짚어보아야 마땅하겠지만, 새사연의 책무가 더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둘째, 시민운동-노동운동을 이끌어 오신 분들과 함께 <진보대통합시민회의>에서 제가 상임 공동대표를 맡은 사실을 보고 드렸습니다. 회원님들께서 보시다시피 통합진보당은 2011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와 달리 진보신당과 진보적 시민운동 세력이 조직적으로 합류하지 못해 미완의 통합이 되었고, 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보대통합시민회의 상임공동대표 자리에서 곧바로 물러났습니다. 진보신당은 독자적 길을 걷고 진보적 시민운동은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면서 대통합은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지형이 변화하는 흐름은 또렷합니다.

물론, 저는 오늘의 상황을 낙관하진 않습니다. 더구나 2011년에 우리는 많은 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선생이 운명할 때까지 진보대통합을 촉구했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 학습에 앞장서 온 서울노동광장의 이춘자 대표도 갑작스레 떠났습니다. 이 대표는 새사연 창립에 함께 한 박세길 부원장의 평생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향을 피워 그 분들의 명복을 빌며 저는 살아남은 자의 책무는 고통 받는 민중이 희망으로 반길 대안을 마련하고 그 대안을 실현할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다짐했습니다.

새사연은 정태인 원장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진보의 대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완의 진보대통합 또한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이뤄질 터입니다. 더디어도 이 땅의 민중은 아래로부터 다시 힘차게 단결의 깃발을 들어 올리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쉬움은 크지만 절망은 금물입니다.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서자는 데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로 뭉쳐 뜨거운 열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현해갈 그 길은 적어도 5년 전에 견주면 훨씬 나아갔습니다. 미완의 그 길을 열어갈 임무가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사연은 새해 3월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체제로 새 출발 할 예정입니다. 늘 자랑스러운 새사연 회원님들께 성심으로 절 올립니다. 새해 회원님과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깨끗한 뜻 이뤄 가십시오.

이사장 손석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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