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1. 긴축, 그 위대한(?) 반전2.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3.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본문]긴축, 그 위대한(?) 반전내년 세계경제 전망이 어둡다. 최근 OECD는 회원국들의 성장률이 올해 1.9%에서 내년에는 1.6%로, 유로지역의 경우 1.6%에서 0.2%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 마저도 유로지역의 “무질서한 디폴트, 급격한 신용붕괴, 체계적 은행파산, 그리고 과도한 재정긴축을 피하기 위해 정책당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스페인(0.3%)을 제외하고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상했다. 세계경제 이상으로 유럽 재정위기 해결이 어둡다는 것을 말해준다. 재정위기의 바로미터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재정적자, 금리, 그리고 성장률에 주로 의존한다. 따라서 정부가 균형재정을 유지하더라도 금리가 성장률을 상회하면 이 비율은 증가하게 된다. 현재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7%를 넘고 있는데, 성장률이 마이너스이면 부채 비율이 늘어날 것은 확실하다. 그리스의 경우 작년에 트로이카(EU, ECB,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2014년까지 GDP의 3% 이내로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2008년 118%에서 내년에 181%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인가? 재정위기에 대한 트로이카의 처방, 즉 긴축정책이 지극히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이 대세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재정지출 축소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 전체와 미국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리스 재정위기가 방만한 복지지출 탓이라면서 이를 교훈삼아 한국정부도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하고 재정균형을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긴축이 재정위기의 해법이고 경제위기를 막기위한 적절한 처방인 것인가. 그렇다면 긴축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분기점은 언제일까. “선진국 경제는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이고, 2016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줄이거나 안정화시킬 재정계획을 약속한다.”고 선언했던 2010년 6월 G20 토론토 정상회의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180도로 경제정책의 기조가 바뀐 것일까? 당시 경기부양에서 재정긴축으로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성장률이 예상보다 너무 좋을 정도로 회복속도가 빨랐다. 2009년 4월 런던 정상회의 즈음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은 1.9%였으나 그 해 9월에는 2.6%로 상승했고 토론토 정상회의가 열리던 작년 6월에는 3.5%까지 증가했다. 일시적인 경기회복 분위기에 편승해 안이하게 정책기조를 틀어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토론토 G20회의 직전인 2010년 3월부터 그리스와 남유럽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기 시작했고, 영국의 우파정부 집권과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의 재정위기 논란이 정치적으로 국제적 여론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1936년 재선에 성공하고서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금리를 인상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수에 비견할 만하다. 그리고 ‘작은 정부’의 기치를 내건 대처와 레이건의 ‘보수 반혁명’에 필적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큰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위기를 예상하지도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며 숨죽이고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국가재정위기’라는 용어를 빌려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분명 ‘위대한 반전’이다. 그러나 그릇된 정치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 세계적인 성장률 하락, 그리고 실업률 상승이 바로 그 징표들이다. 합성의 오류, 가계와 정부는 다르다 경제학에 능통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자신의 개인적 상황을 사회 또는 경제 전체의 상황으로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가계의 일시적 적자는 저축이나 빚을 활용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자가 지속되면 빚이 늘어나고 원리금 상환액이 눈사태처럼 불어나면서 파산에 빠지게 된다.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언론은 정부의 재정적자 문제를 가계의 예산 문제에 빗대어 “지금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언뜻 그럴싸한 소리다. 그러나 여기에 치명적 오류가 숨겨져 있다. 바로 거시경제학에서 말하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다. 케인즈가 ‘일반 이론’에서 지적했듯이 “총량으로서 경제적 행위에 대한 이론과 개별 단위의 행동에 대한 이론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케인즈는 ‘저축의 역설’을 통해 합성의 오류를 설명한다. 한 개인은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빵집에서 매일 빵을 아침으로 먹는 길동이가 일주일에 한 번은 빵을 사지 않고 저축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하자. 물론 배고픔을 대가로 그의 저축액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행동하면 총저축은 늘어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빵 판매가 줄어들면 점원을 줄이고, 밀가루, 고기, 야채 등의 주문도 줄어 고용이 줄어 들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점원은 소득이 줄어들어 오히려 저축을 줄여야 할 것이다. 이 사례에 담겨 있는 함의는 개인의 저축행위가 타인의 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정부는 개인과 달리 총수요의 한 부문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경제주체다. 특히 남유럽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정부지출은 GDP의 40%를 초과한다. 경제는 크게 가계와 기업을 포함한 민간, 정부, 그리고 해외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 전체적으로 이 세 부문의 지출의 합은 소득의 합과 반드시 같아야 한다. 물론 어떤 한 부문만을 놓고 보면, 소득보다 덜 지출하여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부문이 흑자를 이루면 다른 부문은 반드시 적자가 발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 부문이 균형(경상수지 균형)이라면, 민간 부문이 흑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 부문이 적자 지출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해외부문 수요 부족(GDP 10% 수준의 경상수지적자) 상황을 정부가 10% 적자 재정지출로 메우고 있는 중이고 민간 부문은 거의 균형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경상수지가 10% 적자 수준에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GDP의 3% 수준으로 ‘긴축’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게 민간 부문이 7% 수준으로 적자를 내서 지출을 늘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출이 축소된 만큼 국민소득이 줄어들고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를 치듯이 재정적자 축소가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부문에서 그 만큼 지출 확대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민간 부문이 더 지출하거나 해외에서 남유럽의 재화를 더 구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하는 트로이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한 손으로 손뼉을 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으르고 방탕한 너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칠 뿐이다. 이는 도덕일지언정 경제정책이 아니다.물론 1990년대 스웨덴이나 캐나다의 경우 긴축재정을 통해 재정위기를 돌파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이들 국가는 금리나 환율 조정을 통해 내수와 수출 증대를 달성할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세계경제는 미국의 신경제를 필두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유로화에 가입된 남유럽 국가들은 통화정책을 통해 금리를 낮출 수도, 명목환율의 조정을 통해 수출을 늘릴 수도 없다. 개별 국가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선택은 임금을 깎아 가격을 떨어뜨리는 내부 평가절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핍’은 남유럽 국민들의 엄청난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실업률이 2008년 7.7%에서 긴축정책을 실시한 이후 두 배 넘게 상승하여 16.6%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조정,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가혹한 내핍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유럽 국가의 물가상승률을 독일보다 낮춰야 한다. 독일의 물가상승률이 현재 1.5% 수준인데, 남유럽 국가는 이보다 더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내핍을 강요하는 것으로 디플레이션에 따라 오히려 부채의 실질가치가 늘어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가능한 해법은 유럽중앙은행이 남유럽의 상황에 맞게 현재 2% 수준의 목표물가를 상향 조정하고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제로금리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기준금리가 1.25%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인 ‘최종대부자’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 일본, 영국의 중앙은행이 실시했던 양적완화 정책은 바로 유럽중앙은행에 필요하다. 남유럽 국채 발행의 차입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무제한적인’ 국채매입 계획을 발표하여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중심국으로의 전염을 차단해야 한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가 예상을 넘어 확산된 데에는 유럽채권의 디폴트에 배팅하는 투기세력의 개입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 국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왑 (CDS)등 파생상품과 헤지펀드에 대한 강력한 규제, 급격한 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토빈세 도입 등을 통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아울러 개별 국가의 긴축에 따른 ‘지출 갭’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로화의 최대 수혜국인 독일과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적극적인 내수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경기 침체는 재정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이는 또 다시 긴축을 강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모든 노력에는 유럽 정상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럽 위기의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이 2016년까지 재정균형을 달성하여 유럽의 본보기가 되려는 야심찬 ‘긴축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우려된다. 여하튼 12월 초로 예정된 유럽 중앙은행 통화정책회의와 유럽 정상회의에서 유로 금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리고 유럽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정책에 대한 전환이 있을 것인지의 여부가 갈수록 긴박해지고 있는 유로 붕괴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이 글은 주간지 시사인에 기고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PDF파일 원문에서는 그래프를 포함한 본문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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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은 위기의 해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