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기슭에 자리한 연구원 마당에 가을이 흔전만전 떨어지고 또 굴러다닌다. 몽롱한 노랑과 적갈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던 영화, <뉴욕의 가을>도 주코티 공원에 내려앉았을 것이다. “독재타도”를 외친 ‘아랍의 봄’은 철을 따라 “월가를 점령하라”며 뉴욕의 가을에 다다랐다.아랍의 젊은이들은 선진국의 비호 아래 한 나라의 지하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던 아랍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이제 미국 젊은이들이 제국의 심장에서 전 세계를 거품 속으로 몰아 넣었던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협하고 있다. 정확히 10년 전, 상징적 하드웨어였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졌고 바로 그 옆에서 젊은이들은 그 소프트웨어를 겨누고 있다.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시스템’이 그 대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선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와 FTA를 체결해 우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59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본질을 이렇게 잘 표현해 주는 증언도 없다. 바로 그 선진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다. 2008년 가을 봉하쌀이 일렁이는 황금빛 들판을 보면서 퇴임 대통령은 이렇게 토로했다.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우리 경제와 금융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한·미 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임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진지하게 이 우려를 검토하지 않았다.봉하에 불려간 사람은 지금 미국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축배를 들고 있을 한덕수 주미대사, 그리고 처음 ‘선진통상국가론’의 아이디어를 낸 조윤제 교수였다. 이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잠깐의 혼란이 지나가면 곧 안정을 되찾을 거라고, 그래서 한·미 FTA가 담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영원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중국의 위협 때문에 우리는 하루빨리 금융 등 서비스업으로 특화해야 하며 한·미 FTA는 그 금융허브의 꿈을 실현해 줄,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무기였으니 말이다. 한·미 FTA는 특히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명시적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100% 역행한다. 한·미 FTA를 대상으로 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우려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정책을 내놓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신현송 국제경제보좌관이었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 규제, 외국인 채권 구입에 대한 면세 환원, 거시건전성 부담금(Bank Levy) 등 일련의 거시건전성 규제 정책이 그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 내에서 그만큼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또 대통령의 총애 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작업팀은 이들 조치가 한·미 FTA에 저촉되지 않는지 꽤 신경을 썼을 것이다. 실제로 한·미 FTA가 발효돼 있었다면 이들 정책은 모두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 면세 환원조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많은 양자간, 지역 무역협정은, 각국이 적절한 규제와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개혁과 경기 패키지에 의해 현재의 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제한한다.”(스티글리츠 보고서) 2009년 마이너스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멕시코, 그리고 2001년 아르헨티나의 비극이 보여주듯이 한·미 FTA는 위기의 전파 통로가 될 뿐 아니라 위기에 대한 긴급조치마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왜 이미 파산이 증명된 시스템, 미국 내에서조차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시스템을 우리 땅에 직수입해야 한다는 말인가.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고 한 건 역시 서정주였던가. 우리 모두 지쳤다. 하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서 세상을 수놓은 붉은 단풍처럼 촛불을 이 땅 곳곳에 켜야 한다. 지금 1%가 끌고 올라타려는 난파선에서 우리 99%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거기에 있다.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