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느끼는 공포’와 ‘알면서도 손 놓을 수밖에 없어 느끼는 공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압박이 클까. 전자가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라면 후자는 지금의 경우다. 현재는 증시에서 흔히 말하는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지배하면서 주가 폭락과 패닉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의 재정적자, 국가부채 문제, 실물경기 둔화 등 현재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요인들은 어제오늘 알려진 문제가 아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조차도 지난 4월부터 평가기관들이 공개적으로 경고해오던 것이다.그러나 알고 있는 위기라고 해서 늘 대비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금리 인하, 유동성 공급과 양적완화, 재정지출 등 정책수단들을 중앙은행과 정부가 이미 한도까지 써버렸기 때문에 추가여력 자체가 제한돼 있다. 금리도 이미 제로 수준으로 내려왔고 과잉유동성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정도며, 재정위기로 각 국가가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알고 있지만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 더 두려울 수 있다. 불확실성이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금융시장 혼란이 없을 것이라던 증시 전문가들의 진단이 보기 좋게 빗나간 이유다.또한 지금은 2008년처럼 과열된 부동산이나 금융상품 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이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를 필두로 실물경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둔화 추세가 확연한 마당에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 능력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면서 주식 같은 위험자산 투자를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에 2008년처럼 거품의 연쇄적인 붕괴와 파산의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짜 문제는 이번 금융시장 대혼란의 여파가 이미 하향 추세로 돌입한 실물경제 침체를 가속시키면서 더블딥 우려를 현실로 굳힐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세계적인 주가 폭락 행진이 수습되더라도 경기침체 압박으로 금융시장 경색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며 기업과 가계로 가는 자금 흐름은 눈에 띄게 둔화될 것이다. 경기 전망을 걱정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 소비심리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내수와 수출의 감소로 인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회피하고 현금을 쌓으려는 경향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 주체들의 이 같은 행동은 경기회복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 분명하다.그렇다면 미국이 3차 양적완화를 발표하면 상황이 호전될까. 이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두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2조3000억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실물경제 회복 효과는 실제 미미했다. 특히 2차 양적완화를 시행했던 지난해 4·4분기부터 미국 경제는 본격적으로 둔화되기 시작하여 올해 1분기 0.4%, 2분기 1.4% 성장률에 그쳤다. 그 결과가 지금 금융시장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3차 양적완화가 실시된다 하더라도 강도나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제한될 수밖에 없다.중국이 2008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수조위안을 풀어 경기부양책을 펴고 세계경제를 구해낼 것인가. 당장 9일 발표된 7월 중국 물가 6.5%가 부담이다. 더구나 최근 위안화 환율이 빠르게 절상되면서 중국 역시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최대 채권국가인 중국 정부에도 부담이다. 국제 공조 이전에 향후 미국과 또 한 차례 환율전쟁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실물경제의 재침체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쉽지 않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유독 심각한 문제다. 이 때문에 올해 정부가 전망한 4.5% 성장은 고사하고 4% 성장률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변동성이 유독 심한 금융시장 안정화와 함께 향후 실물경기 악화에 대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다가올 정기국회와 2012년 예산 편성시 법인세 추가 감세 중지나 사회복지 예산 증액 문제를 심각히 검토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