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유수한 대기업들이 언론에 자주 비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는 대기업들의 엄청난 실적이나 그로 인한 주가상승 등이 주를 이뤘다. 세계 시장에서 현대차가 4위의 이익을 달성했다거나, 삼성전자의 분기실적이 4조원을 넘었다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노조에 대한 탄압이나 불법파견 사례, 그리고 중소기업 시장 잠식 등 각종 불공정 거래행위 보도 등이 부쩍 늘었다. 7월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삼성에버랜드를 포함해 삼성 계열사들에서 속속 노조가 결성되자 삼성은 관련 노동자 해고로 대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대차 사내하청의 경우 도급(하청)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대법원 판결이 1년 전인 지난해 7월22일 나왔건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보도도 있다. 부동의 재계 1·2위 기업집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업집단 가운데 자산규모 24위인 신세계그룹 계열의 이마트가 중소상인들의 소매시장을 싹쓸이한 것도 모자라 창고형 도소매 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온라인 도매몰인 이클럽 등을 개점하고 도매시장에서 생계를 영위하는 중소 도매상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도 있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들이 갑자기 수익실현이 막혔기 때문일까.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지난 1년 동안 삼성그룹은 당기순이익이 38%, 현대차는 60%, 그리고 신세계그룹은 두 배에 가까운 80%가 늘었다. 55개 대기업집단의 당기순이익은 66%가 늘었으니 전체적으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들어갈 비용부담 압력이 크거나 기존 시장에서 수익률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일까. 문제는 대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가 최근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그랬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겉으로는 세련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내면에서는 노동자와 중소기업, 중소상인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욱 높였다.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유연화를 강화하고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관리도 훨씬 심해졌다. 내수 독점도 심해져서 중소상인들 골목시장까지 잠식해 왔다. 다만 재벌 대기업의 오만과 횡포가 최근 이슈가 되면서 새삼스럽게 부각된 것일 뿐이다. 대기업의 독점규제와 불공정거래 근절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진 정부조직인 공정거래위원회가 20일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 이행실적’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이라는 것을 체결하게 하고 그 이행실적을 점검한 결과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정책과제로 제시한 후 정부의 의지가 높았기 때문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116개 대기업에 대해 동반성장 협약 이행평가를 실시한 결과, 43.1%에 해당하는 50개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양호’ 등급 미만을 받았다. 이행 자체가 법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것이어서 사실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황당한 것은 ‘양호’ 등급 미만을 받은 대기업들이 어떤 기업인지 동반성장 협약절차 규정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불법파견을 판시한 대법원도 무시하고 있는 실정에서 ‘자율적 이행 협약’이라는 것이 재벌 대기업들에게 약발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은 일관되게 ‘자율 협약’이다. 최근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작업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라고 하는 것도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와 달리 강제력이 없는 일종의 자율협약이다. 역시 실효성이 극히 회의적이다. 자율협약이라도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자체 조사한 경우는 참여정부 시기만 해도 해마다 2천건이 넘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990건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절반 미만으로 줄어든 것이다. 불공정 행위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피해를 당한 기업들이 직접 제소한 건수는 지난 정부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불공정 행위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지가 줄어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해법은 사회적인 압력을 높여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하는 것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