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대안이 없다. 흔히 하는 말이다. 기실 그 말이 떠도는 데는 나의 책임도 있다. 2005년 진보적 싱크탱크를 만들겠다며 뜻을 모을 때 무람없이 내세운 명분이 바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은 진보세력의 대안이 완비되었다고 감히 선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다만 지금도 진보는 대안이 없다고 꾸짖는 윤똑똑이들에게는 명토박아두고 싶다. 대안이 없다는 말, 이제 그 말은 게으름의 고백이다. 대안이 없다며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진보’적 교수나 ‘진보’적 언론인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대안이 없다고 진보세력을 나무라는 사회과학자는 정말이지 겸손하게 자기 발밑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안을 만들어야 할 당사자가 대안을 만들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꼴 아닌가. 언론인은 조금 다르다. 정책 대안을 직접 제시할 당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책임도 그만큼 줄어들까?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축적되어 가는 진보적 정책 대안들이 국민 사이에 소통되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언론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민주노총이 연 토론회를 짚어보자. 이명박 정권이 언죽번죽 부르댄 ‘경제 살리기’가 민생 파탄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대안을 전면에 내걸고 토론회를 열었다. 사무금융연맹과 금속노조가 함께 한 토론회는 보도자료에서 제시했듯이 ‘이명박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노동자 대안’을 목적으로 했다.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국장은 발제문을 통해 해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지고 소득 불평등이 깊어진 현실을 객관적 통계로 제시하며 이명박 정권조차 내수 활성화를 위한 30개 과제의 우선 도입을 발표할 만큼 국민 대다수가 늪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틀을 바꾸지 않은 채 내놓는 내수 활성화 대책은 미봉책일 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없다고 진단했다. 민주노총은 권력이 의지만 있다면 당장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협상권을 보장하고 원자재 가격의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정책은 결코 과격한 요구도 이념적 주장도 아닌 실질적 대안이다.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리해고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도 명쾌하다. 한진중공업 경영진이 살천스레 자행한 ‘정리해고’에 맞선 싸움이 경제를 살리는 길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제시한 ‘경제 살리기’의 구체적 정책 대안들은 신문과 방송은 물론 인터넷신문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토론회에 단 한명의 기자도 없었다. 기실 사회단체들이 부족한 예산을 털어 토론회를 여는 이유는 그만큼 여론 형성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무리 대안 토론회를 열고 책을 출간해도 국민과의 소통이 막히는 데 있다. 대다수 언론이 모르쇠해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토론회가 기사화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나마 인터넷신문들이 보도할 뿐이다.과연 그래도 좋은가. 자칭 보수언론들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세력의 대안들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정리해고 남용을 막기 위해 한진중공업을 찾아간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얼굴에 최루액을 발사한 경찰을 비판하긴커녕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갈등을 부추긴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뉴스기사에 담는다.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막는 게 한국 경제를 살리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라는 판단은 보수언론의 기자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논리일까?진보를 내세운 언론도 진보세력의 대안을 보도하는 데 인색하다. 왜 그럴까? 새삼 궁금하다. 왜 그들은 진보세력의 토론회를 취재하지 않는 걸까? 왜 진보정당이 내놓은 대안들을 국민에게 알려주고 여론화해나가는 일에 게으를까?최근 <문화일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좌클릭’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대부분 민주노동당 정책을 베낀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그 기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여섯 석짜리 민노당의 급진적인 주장에 끌려 다니며 민노당 3중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극우단체의 개탄을 전하고 있듯이 색깔공세가 목적이다. 하지만 두 당이 진보정당의 정책을 베끼고 있다는 진실을 담고 있다. 진보세력이 애면글면 만들어 대안으로 내놓아도 모르쇠 하는 언론인들이 그것을 민주당이 나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때 부각하는 보도행태를 어떻게 보아야 옳은가. 자칭 보수언론의 무지 못지않게 진보언론의 나태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진보를 표방하는 교수와 언론인들이 진보세력은 대안이 없다는 주장을 곰비임비 늘어놓으면서 국민 대다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다. 진보는 대안이 없다고 꾸짖는 글을 쓰거나 희망이 없다고 지레 체념하기 전에 이제는 꼼꼼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참으로 진보는 대안이 없는가를.이 글은 ‘미디어 오늘’ 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