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에 가깝단다. 칭찬인지 조롱인지 분간하기 힘든, 묘한 뉘앙스였단다. 통찰력을 지닌 사람은 그 속을 읽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헛다리를 짚었다고 강조한다.어느 기자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을 두고 쓴 기사 들머리다. 대체 이 회장의 어떤 발언이 기자에게 통찰력 넘실대는 선문답으로 들렸을까? 이 회장이 4월28일 삼성전자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답한 말이 그렇단다. 이 회장은 “공개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과연 무엇이 선문답이고 통찰력일까? 어느새 한국 언론은 이건희의 발언을 선문답으로 신비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두루 알다시피 이건희의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참모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곽 위원장은 4월26일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보유지분은 5%로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지분(3.38%)보다 많다. 그럼에도 이건희 회장이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답한 이유는, 더구나 공개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환영한다고 밝힌 까닭은 간명하다. 기자 스스로 ‘선문답’을 풀이하고 있듯이 자신감이다. 이건희 회장 자신감과 ‘선문답 언론’곽 위원장의 발언에 곧장 ‘연금사회주의’로 붉은 색깔을 덧칠하거나 “노무현 정부보다 심하다”는 재계의 요란한 반응에 견주어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분명 다르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오만 또는 으름장이다. 회장이 발언할 때마다 ‘해명’에 바쁜 삼성은 이번에도 “시장경제에서 주주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원칙론을 언급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물론, 선문답으로 여기거나 확대 해석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있는 그대로 보아도 충분해서다. 삼성 스스로 해명했듯이 시장경제에서 주주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명토박아 두거니와 이건희 회장도 ‘공개적 행사’는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국민 세금을 쓰며 미래기획위원장 자리에 앉아 있는 곽승준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럴 생각도 의지도 전혀 없으면서 불쑥 공적 연기금을 꺼내든 목적이 대통령의 ‘권위’ 세우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어리보기는 없다. 한나라당과 재계 사이에 오가는 선문답 아닌 신경전 앞에서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이 모두 쓸려갈 수 있다며 쓰나미를 ‘경고’하고 나선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내년 4월 대지진에 12월 쓰나미인가’ 제하의 강천석칼럼(4월30일자)은 “한나라당과 재계, 넓게 말해 이 땅의 보수세력에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고 부르댔다. 그날 <조선일보> 사설은 내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는 12월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며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통해 “두 사람이 현재 권력의 성공과 미래 권력의 탄생을 위해 또 한 차례 정치적 타협을 이끌어”내라고 촉구했다. 박근혜를 내놓고 ‘미래 권력’으로 표기한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삼각동맹 2012선거판서 단결할 것 한나라당이 자신의 ‘텃밭’에서 패배한 4·27재보선 뒤 박근혜에 쏠리는 한국 언론을 톺아보면 새삼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숨은 동맹’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한나라당 정권과 재벌―조선일보 주필의 표현처럼 ‘재계’라 해도 무방하다―이 아옹다옹 하는 꼴을 개탄하며 ‘화합’과 ‘미래 권력의 탄생’을 주문하는 ‘언론’을 보라. 한나라당·재벌·언론이라는 삼각동맹(한·재·언 동맹)의 검은 실체가 떠오른다. 4·27재보선에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의 심판을 받았는데도 민생 해결에 나설 섟에 대기업과의 ‘관계 정상화’에 더 급급한 이명박 정권이나 자신의 이익을 전혀 나누지 않으려는 인색한 재벌의 모습은 저들의 동맹자인 언론권력의 눈에도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을 터다. 기실 한나라당이 언제 민생 앞에서 정책다운 정책을 내놓은 경험이 있었던가. 재벌이 서민 앞에서 언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 감동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저들이 오늘처럼 건재하고 있는 까닭은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편파적인 법집행에 더해 언론이 그들 쪽에 서서 여론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권과 재벌 사이에 툭툭 불거지고 있는 갈등을 언론권력이 서둘러 봉합하려고 나선 이유도 자칫 자신들의 삼각동맹에 의도하지 않은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해서다.2007년 대선 때도 그랬듯이 한·재·언 동맹은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해 다시 ‘단결’할 수밖에 없다. 이미 그 동맹으로 언론권력은 제법 쏠쏠한 전리품을 챙기지 않았던가. 저마다 하나씩 꿰찬 종합편성채널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2012년 대선에서 저들이 나눠가질 전리품은 또 무엇일까. 보라. 한나라당·재벌·언론의 삼각동맹이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나라, 바로 허울뿐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실체다. 선문답이 결코 아니다.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