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융(Social Financial Services)이란 표현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용어다.


빈곤, 환경, 지역사회, 교육, 고용 등 ‘한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자금의 흐름’을 통칭하여 사회적 금융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기존 금융거래 시스템과 다른 원리와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대안 금융’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회적 투자 혹은 사회적 금융이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영국이다.


 영국은 이미 10년 전에 정부 산하에 ‘사회투자 전담팀(Social Investment Task Force)’을 만들어 지역사회 및 사회적 기업에 대한 다양한 투자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보고서(영국 사회적투자 10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은 투자형태(기부, 대출, 주식투자)와 상관없이 사회적 경제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는 투자행위를 사회적 투자로 정의하고, 사회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추동엔진으로 ‘금융의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사회적 금융 생태계는 단순 기부에서 인내자본, 대출, 그리고 수익률 기반의 벤처투자에 이르는 공급(자금 제공자) 라인을 한 축으로, 자선단체에서 NPO, 영리형 사회적기업 나아가 영리 기업까지를 포괄하는 수요(자금 사용자)라인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투자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최근 집권한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이끄는 보수당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 풀뿌리 단체 등 제 3섹터를 성장시켜 사회서비스 영역을 이들에게 넘긴다는 구상 아래 약 4억 파운드(7천억 원)에 달하는 은행 휴면예금을 활용해 이른바 ‘Big Society Bank’라 불리는 사회투자 은행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책 집행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는 재원을 ‘나라 곳간’이 아닌 시장을 통해 조달함으로써(보도에 따르면, 은행과의 빅딜을 성사시켰다고 함)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사회 재건 프로젝트(Big Society project)를 수행하려는 구상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민간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일부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구 노동당 내각이 추진해왔던 사회적 투자와 관련된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민간 자본을 사회적 투자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 정부는 새롭고 신선한 접근방법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PF) 기법을 활용한 사회혁신채권(Social Impact Bond)이다. 사회혁신채권이란 (지방)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국채 혹은 지방채다.


 



 특정 목표(범죄율 하락이나 질병 감소)를 달성할 경우, 비용감소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해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먼저 지방정부는 기대목표 달성 시 일정한 보상을 한다는 계약을 사회적기업과 체결하고 지급보증을 한다. 사회적기업은 이 계약서를 담보로 민간으로부터 대출(투자)을 받아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실행 결과에 따라 보상금을 받고 대출금을 상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비슷하거나 더 적은 비용을 들여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고, 금융회사는 정부가 보증한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니 무위험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사회적기업은 성과에 따른 보상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영국은 2000년 노동당 집권기에 사회투자 전담팀을 만든 이래, 2010년 보수당이 시민사회청(OCS. Office of Civil Society)을 신설할 때까지 일관된 정책 기조 하에서 정부 각 부처별로 특성에 맞는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사회적 금융 시장을 신흥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으로 바라보고,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행정이 아니라 긴 안목 속에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영국뿐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좋은 사업에 투자하는 착한 은행,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안 금융기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9년에 설립된 ‘가치 지향적 은행 사업을 위한 세계연합(GABV, Gloval Alliance for Banking on Values)’은 사회 빈곤층과 지역사회,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대안은행 국제 네트워크 조직으로 2020년까지 10억 명의 인구를 네트워크 안에 동참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금융이라는 단어조차 낯설 정도로 이 분야는 거의 황무지에 가깝다. 금융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자금을 대출해주는 마이크로크래딧 기관은 있지만 사회적기업들의 자립, 자활을 돕는 기금이나 공익적 목적의 사회 프로젝트(Social project)에 투자하는 금융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에서 잠자는 돈을 사회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는 동일하나, 투자 대상과 활용 방법은 영국과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제도금융권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서민금융도 중요하지만, 정부도 기업도 책임지지 못하는 제 3섹터 시장을 키워내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영역이다.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회적 금융은 쓸모없는 돈놀이가 될 수도 있고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금융권 사정은 어떨까? 대표적 금융기관인 은행의 경우를 보자.


금년도 1분기 중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전 분기 대비 약 70%가 늘어난 3조 4천억 원으로, 작년 2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손비용의 감소, 순이자 마진의 지속적 개선에 힘입어 대손준비금을 적립하고도 불과 3개월의 머니게임으로 3조가 넘는 수익을 거둔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매년 십조 원이 넘는 이익을 남기고 있지만, 어디에도 사회적 금융을 고민하거나 실천하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서민의 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은 부당 대출과 금품수수 등 금융 비리가 드러나면서 대규모 예금인출(Bank-run)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금융회사를 관리, 감독하는 주무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총체적 부실의 온상’이 되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재정적 위기에 처하면 정부는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여한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다. 영향력이 클수록 위기의 파장 또한 큰 법이니 지원금의 규모와 내용도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모두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사회에 대한 기여도 없이,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한 금융회사의 존속을 위해 늘 국민이 ‘볼모’가 되어 희생해야 한다면 누가 이것을 받아들이겠는가?


 



 금융의 공적 기능은 사라지고 부패와 비리로 점철된 금융 사고들이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는 요즈음,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행복과 건강한 사회,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착한 금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수익창출보다 사회적 편익을 더 중시하고, ‘경제의 혈관’으로서 소외된 대상 없이 모든 이에게 골고루 피를 공급할 수 있는 ‘진짜 금융’ 말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11.5.8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