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이건희 회장에게 건넬 용기 있는 인재가 과연 삼성에 있을까? 칼럼을 쓰며 슬그머니 묻고 싶다. 삼성과 이건희를 시나브로 망치는 사람들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과 직접적 연관성을 맺고 있는 <중앙일보>를 보라. 초과이익공유제 소동 때와 똑같이 다시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사설 제목으로 삼았다.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사설 제목(2011년 4월23일자)이 그렇다. 이건희 회장이 보기엔 <중앙일보> 논설 책임자가 일을 참 잘한다며 흐뭇했을 성 싶다. 하지만 과연 저널리즘으로 보아도 그럴까. 아니다. 비단 <중앙일보>만이 아니다. 어떤 언론인은 애플의 소송제기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던진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발언을 두고 “짧으면서 핵심을 찌르는 이건희 식 화법은 마치 화두를 던지듯 빠르고 날카롭다”고 썼다. 민망하다.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 이건희 발언 찬양 어떤가.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는 발언이 정말 탁월한 화법일까? 심지어 <중앙일보>가 사설 제목으로 올릴 정도일까? 상식으로 짚어보자. 그 말은 날카로운 화법이긴커녕 대단히 잘못된 비유다. 스스로 삐죽 나온 못을 자임하고 있지 않은가. 굳이 냉철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못이 나오면 때려야 한다. 그래야 모두 안전하다. 나온 못은 잘못 아닌가. 물론, 나는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의 화법을 두고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희는 화법 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참모들과 들꾀는 언론인들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건희의 잘못된 비유를 사설 제목으로 삼아 짐짓 위엄을 떤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활약이 돋보이자 사방에서 때리기가 시작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대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못이 튀어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라며 ‘전 세계에서 우리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으로 한국 기업이 잘하면 잘할수록 시샘과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게 분명하다.” 사설 논리 전개로 보아도 ‘튀어나온 못’의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튀어나온 못을 때리는 것은 시샘이나 견제가 아니다. 응당 해야 할 옳은 일이다. 회장 이건희에게 아첨을 늘어놓다 보니 그 잘못된 비유가, 그 품격없는 화법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특별히 할 일 없어서 집무실에 처음 나온 그룹 총수 더 큰 문제는 단순한 화법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 집무실에서 처음 나온 그에게 기자들이 출근한 이유를 묻자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왔다”고 답했단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할 일이 없어 집무실에 나왔다? 묻고 싶다. 그 말살에 쇠살을 비판하는 언론은 왜 없는가? 삼성전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품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애먼 젊은이들이 곰비임비 숨져 원혼이 되어가는 데도 그 ‘총수’는 “할 일이 없어” 집무실에 처음 나왔단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그의 화법을 찬양한다. 사설 제목으로 삼는다. 그들은 누구인가? 명토박아둔다. 삼성을, 이건희를 망치는 사람들이다. 새삼 궁금하지 않은가. 이 글을 이건희 회장에게 건넬 용기 있는 인재가 과연 삼성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