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고통 06 – 1,200여 일의 겨울

By | 2018-06-29T17:04:20+00:00 2011.04.13.|

  지난 금요일 늦은 밤 귀가하는 차 안에서 들었다.

  “봄은 봄인데 아직 봄이 아닌 것 같아요……”


말하던 그녀의 음성은 슬프지 않았고, 쓸쓸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봄을 기다리는 이의 설렘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심하고 공허해 보였다. 해야만 하기에 불빛 없는 어둠 속을 묵묵히 걷는 이들의 어깨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공허였다. 짧은 한 마디는 늦가을 타다 남은 자작나무의 냄새를 풍기며 한 동안 차 안을 맴돌았다. 그녀는 ‘재능교육’의 해고노동자다.


 


  그들의 지난한 여정은 벌써 천 이백여 일이 넘었다. 그 길이 이토록 길어질 줄은 상대방도 몰랐고, 그들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힘겹고 길어질 줄 미리 알았다면 시작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라던 현 재능노조 사무국장의 담담한 눈빛은 진실해 보였다.


 


   2007년에서 2008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그들의 저항은 시작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얄팍했던 월급봉투마저 제대로 넘겨주기 아까웠던 5월의 수수료율 개악이 그 시발점이었다. 1999년 11월 ‘서울지방노동청’으로부터 ‘노동조합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고 합법적 교섭활동을 해왔던 ‘재능교육교사노조’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2003년 6월 학습지 교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과 2005년 11월 ‘학습지교사는 근로자로 볼 수 없으므로 전국학습지노동조합은 노조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노동부의 앞뒤가 다른 행정해석은 재능교육 사측에 빌미를 주었다. 그들은 귀를 막았고, 그동안 노사가 함께 만들어왔던 단체협약을 저버렸다. 지난 12월31일 남아있던 조합원 4명을 끝내 해고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가압류와 손해배상 청구 등을 통해 저항하는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 이어진 이 저항이 고작 1~2%의 수수료율 차이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이익 앞에 노동자들의 월급봉투보다 얄팍해지는 사측의 마음자세가 가장 큰 원인이며, 업무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해고 등이 가능함에도 정당한 노동자로서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부실 또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


 


  얼마 전 대한민국에 던져진 ‘마이클 셀던’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생각했다. 불의로부터 사회정의와 약자를 보호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는 법철학의 근본정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금요일 서울광장 맞은 편 재능본사 앞에선 해고노동자들의 문화제가 있었다.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쫓기 듯 물러나와 그곳에 자리 잡았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7시30분이 좀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는데…, 소공동 모퉁이를 돌며 마치 봄과 겨울의 경계를 넘는 것 같은 불가해한 경험을 했다. 유난히 해가 잘 들지 않는 그곳엔 높은 건물들이 우뚝했고 그 짙은 그림자 사이로 도시의 와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2시간이 좀 못되는 문화제 내내 ‘인디언들의 기우제’를 생각했다. 비를 기다리는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언제나 기적같은 효험을 보였는데, 그 까닭은 그들의 기우제는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물론 스스로 합리적이라 자처하는 많은 이들에겐 온도, 습도, 바람 등……비가 올 만한 필요충분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기원 하는 일이 무척 어리석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역사는 아무런 희망을 찾아 볼 수 없는 척박한 조건에서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어리석은 땀방울을 자양분 삼아 변해오지 않았던가.


 


  문득 ‘교육은 다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라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결코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생의 조건 가운데 희망을 이야기해야만 했던 재능교육 선생님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생각했다.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된 그들의 분노를 생각했다. 천 이백여 일의 긴 시간 동안 그들이 감내했을 수모와 치욕을 생각하며 무기력한 스스로의 모습에 무척 참담했다. 그들의 오랜 고통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 나의 참담함에 한 동안 부끄러웠다.


 


  그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열기만큼은 계절의 운행을 잊은 겨울바람 앞에서도 의연했다. 해고된 재능교육 조합원들의 기우제는 결국 비구름을 부를 것이고, 법으로는 지켜내지 못할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며, 이 지긋지긋한 겨울을 끝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의 심장을 자처하는 그 곳에 봄을 불러올 것처럼 만 보였다.


 


 




 


 20110405 서울광장 재능교육 옆.


<이미지 펌 –  http://www.mipaseok.com/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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