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흔히 뿌리는 사람이 거두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요.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다를 때가 더 많아 보입니다. 역사를 톺아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누군가 몸을 던져 씨를 뿌리면, 누군가는 그 열매를 거둬갑니다.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는 사람마다 다를 터입니다. 아마 당신도 그 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터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10여 년 옥고를 치렀던 분이지요. 한국전쟁이 끝난 지 3년 만에 진보를 내걸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 216만 표를 얻었습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100만 표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유권자가 지금의 절반이었던 그 시기에 얼마나 많은 표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였지요. 이승만은 그를 체포하고 사법부에 개입해 사형으로 몰아갔습니다. 4월 혁명이 일어나기 아홉 달 전에 ‘사법 살인’ 당했지요. 사월혁명 아홉 달 전에 이승만 손에 사형 1959년 7월31일 사형당하기 직전에 그분이 남긴 유언은 심금을 울립니다. “결국엔 어느 땐가 평화통일을 할 날이 올 것이고 바라고 바라던 밝은 정치와 온 국민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부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를 뿌려놓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 죽산 조봉암. 그 분은 그렇게 이 땅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52년이 흐른 2011년 1월20일 대법원은 재심에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사필귀정이지요. 그런데 생게망게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 ‘죄’도 없는 대선 후보에게 사형을 선고해 집행케 한 세력 가운데 반성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법부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보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넘어가도 좋을까요? 젊은 당신께 여쭙니다. 심지어 언론은 조봉암의 무죄 선고 앞에서 진보세력을 훈계하고 나섰습니다. <중앙일보>의 기자칼럼은 “이번 판결로 진보도 피해 의식을 버리고 책임감을 가질 때가 됐다”고 씁니다(2011년1월22일자). 뜬금없다 못해 적반하장이지요. 조봉암에게 사형을 집행할 때 법무부장관이 바로 삼성 이병철과 함께 <중앙일보>를 창간한 홍진기입니다. 지금 홍석현 회장의 아버지이지요. 그 신문이 조봉암의 사법살인에 대해 보수 세력이 아니라 진보 세력을 언죽번죽 꾸짖는 작태는 가관입니다. 물론, 좋게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칼럼이 진보세력의 분열을 질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또한 납득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이 무죄 선고한 날 진보대통합 첫 회의 대법원이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한 2011년 1월20일 바로 그날, 진보정치 세력은 진보대통합을 이루기로 합의하고 연석회의의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습니다. 기존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에 더하여 민주노총과 진보통합시민회의(복지국가와진보대통합을 위한시민회의), 진보교수·연구자 모임, 농민단체가 모여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다짐했습니다. 어떤가요? 저는 조봉암이 복권된 날, 진보대통합 연석회의가 열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시대적 흐름이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정작 그 움직임에 <중앙일보>는 물론 <조선일보><동아일보>는 모르쇠 했습니다. 그래놓고 ‘분열’을 훈계하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래서입니다. 당신께 죽산 조봉암이 뿌린 씨가 새싹을 틔웠다는 소식을 새삼 편지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정치가 절망으로 다가오는 오늘, 저의 편지가 당신의 가슴에 작은 희망의 새싹으로 커가길 감히 기대합니다.(2020gi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