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개혁이 실종된 2010년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이 현재화된 2007년 이후 4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폭발시켰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기점으로 잡아도 2년이 더 될 만큼 세계경제 불황은 장기화되고 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표현하든 아니면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표현하든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깊고 큰 상처를 남기면서 인류에게 경제 사회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경제 불황을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중인 것만은 확실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위기에 직면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1929년 대공황의 학습경험을 살려 유래 없이 신속하게 재정과 통화를 투입하고 국제 공조를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한 채 2010년 2분기를 정점으로 회복세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미국 등 주요 경제 선도국가들이 1929년과는 달리 국내 산업기반이 상당히 취약할 뿐 아니라 재정과 채무구조도 매우 허약한 상태여서 1929년 방식의 케인주의적 부양책을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1929년과는 달리 국제적 생산 분업 구조가 아시아를 포함하여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고, 글로벌 금융자산의 세계화 정도 역시 연간 세계 무역규모 32조 달러의 5배가 넘는 175조 달러로 팽창한 조건에서 일부 국가의 재정적, 금융적 역량만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어느 쪽에서도 향후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경제발전’ 방향을 제대로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재정긴축인가 재정 팽창인가, 통화 공급 확대인가 축소인가, 무역과 경상수지 불균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글로벌 통화체제의 안정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금융 규제의 정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고용여건을 해소하면서 국가와 개인이 안고 있는 부채를 어떻게 축소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누구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현실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방향도 불확실한 상태인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과거 경제발전을 약속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제로는 경제 불안정성만 확대해왔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인 개방화, 자유화, 금융화, 민영화, 작은 정부 기조에 대 수술을 감행하여 경제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에 착수하는 것만이 세계경제위기가 안겨준 심각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공감대는 꾸준히 확산되어 갔다. 한국 경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명목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경제 비전이 바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였으며 여기에 1970년대식 토건 경제를 얹은 정도였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에 글로벌 경제위기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2010년 외형적인 경기지표가 뚜렷한 호조를 보이면서 경제개혁과 정책전환 이슈들은 급격히 탄력을 잃어갔다. 국내총생산은 전년도의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6% 이상을 달성했으며, 주가는 금융위기 이전 사상 최고치였던 2000선을 넘어섰다. 마이너스 7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던 일자리도 외형적으로는 30만 개 이상이 신규로 만들어졌다. 수출 증가율도 30% 가깝게 가파르게 회복되기 시작하여 외환 보유고는 3000억 달러에 접근하게 되었고 세계 무역규모 7위로 올라서면서 2011년에는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등장하게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도 3년 만에 2만 달러로 복귀했다. 지표 경기 수치 자체로만 놓고 보면 경제정책의 대전환이나 절박한 경제구조개혁을 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를 반영한 듯, 정부가 무려 1년 동안을 뜸들이며 준비하여 2010년 10월에 발표했던 ‘국가 고용전략 2020’은 2020년 선진국 수준의 고용률 70%달성이라는 거창한 목표와 달리 그 어떤 획기적인 고용구조개혁 방안도 없었다. 금융개혁과제 역시 무성했던 논의와 달리 현실적으로 취해진 조치는 은행 예대율 개선이나 외화 예금 조달에 대한 약간의 규제 말고는 없었다. 오히려 논란이 되었던 외환은행은 하나은행에 인수 합병되고 우리은행 민영화 일정도 속도를 붙이는 등 신자유주의적 기존 정책이 수순에 따라 집행되고 있다. 지표경기 실적 회복세를 배경으로 각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은 강행되었으며 2010년 8월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주택거품도 유지시켜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 불황을 우리 경제 구조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주창했던 진보세력은 경제개혁을 위한 핵심 의제들을 국민들과 호흡하지 못한 채, 4대강 사업을 저지하고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유지, 확대하고자 복지의제를 확산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의미 있는 경제개혁 의제가 사실상 실종된 것이다. 2. 개혁 동력도 회복 체력도 상실한 글로벌 경제 그렇다면 세계 경제 차원에서는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점들이 해결되면서 안정적인 회복세로 접어들게 된 것인가. 그 결과 경제개혁 과제들이 더 이상 절박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경제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인가. 안타깝게도 글로벌 경제의 현실 상태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경제위기를 막으려 했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 덕분에 2009년 2분기부터 약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글로벌 경제는 자유낙하를 멈추고 일정하게 수습국면에 돌입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숨 돌릴 여유를 확보했던 2010년은 글로벌 경제가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문제점들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경제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던 시점이기도 했다. 2010년에 접어들면서 각 국가들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위기 수습대책들을 서서히 거둬들이면서 경제작동을 시장으로 되돌려주는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위기를 초래했던 핵심 영역인 금융규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악화된 고용사정이 미처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복되었던 재정위기, 통화위기 등이 전면에 불거져 나옴으로써 생산과 소비 모든 부문에서 경제 회복세는 짧은 수명을 다하고 다시금 둔화국면으로 진입한다. 2010년 상반기에 터져 나온 남유럽의 재정위기는 그리스 구제 금융으로 이어졌고 시차를 두면서 그 해 11월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확산되었다. 2010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미국 경기의 재 침체 우려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조치를 수반했고, 결국 치열한 환율전쟁(Currency Wars) 개시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사이 기대 섞인 출구전략 시행과 위기 이후의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구상은 실종되었고 다시금 2차 위기관리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었다. 미국경제가 추가적인 6000억 달러의 양적완화 조치로 위기관리에 들어가고 유럽은 1000억 유로에 가까운 아일랜드 구제 금융으로 재정위기 확산 차단에 부심한 가운데, 신흥국들과 아시아는 선진국들의 넘쳐나는 과잉 유동성의 여파로 커져가는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 거품을 막기 위한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 그것이 지금 세계경제의 현주소이다. 문제는 이들 대책들이 전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추가적인 재정확대의 한계에 몰린 오바마 정부가 재정이 아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양적완화 정책을 써서 고용회복과 경기부양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는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보다는 자본시장을 경유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만 높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도 적지 않다. 사정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에까지 구제 금융을 결정하면서 재정위기 확산을 막으려 하고 있지만, 지급 불능에 빠진 이들 국가들에게 부채 규모 자체를 축소하지 않은 채 부채 금리를 조금 인하거나 만기일을 연장해 줄 뿐인 구제 금융으로는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위기를 해결하기 보다는 위기를 지연시키는 쪽의 대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고용부담을 내재한 채 세계경제는 뚜렷한 둔화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부분의 전망 기관들이 2010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4.5%전후였던 것에서 2011년에는 4.0%전후로 둔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10년 하반기 표면화되었던 환율전쟁은 각 국가들이 국제 공조아래 자국의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만으로 고용회복 등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무역 상대국에게 통화 절상 압박을 가하는 등 타국 경제의 일정한 희생을 담보로 자국 경제의 회생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제 공조체제의 사실상의 균열이자 무역전쟁의 전초전 성격이라는 우려할 만한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당초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 달리 환율전쟁의 격전지가 되고 말았던 2010년 11월 서울 G20정상회의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환율 문제도 일단 흔히 쓰는 전쟁에서는 벗어났다”면서 환율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사실 환율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우선 환율전쟁을 초래하게 된 내적 동인인 각 국가의 실물경제가 앞으로도 회복세를 타기 보다는 둔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해 타국 경제의 희생을 요구하는 환율전쟁의 유인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축 통화국가인 미국의 적자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달러체제에 대한 불신과 도전이 더 확대될 것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는 아직도 위기관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위기적 조짐들을 잠복시킨 채 불안한 봉합국면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고, 그런 점에서 경제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3. 실물경제는 중국의 손에, 금융경제는 미국의 손에 그렇다면 세계경제로부터의 탈 동조화(de-coupling)가 사실상 허구라고 하는 것이 입증된 지금,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재 침체와 여전한 불안정성 환경 아래에서도 어떻게 기대 이상의 높은 실적을 달성하면서 경제개혁 과제들을 묻어버리고 있는가. 더욱이 자유화, 개방화 경제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발전해왔던 한국경제가 유사한 경제 모델을 채택했던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 두바이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은 고사하고 어째서 실물과 금융 양쪽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가 재정투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GDP 대비 30% 미만의 양호한 국가부채 규모를 유지해왔던 한국정부가 상대적으로 큰 충격 없이 대규모 재정투입을 단행하여 떨어지는 경기지표들을 떠 받쳐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시행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2009년에 비해 2010년에는 재정지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2011년에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정부 재정지출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기서 대외지향적인 한국경제가 2000년대를 경과하면서 정착시켰던 경제구조 변화를 재검토해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구조와 체질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대외 경제관계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금융시장의 개방화와 자유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이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 안에 유력 신흥시장으로서 편입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자본 차입시장, 주식 채권시장, 외환시장은 대외적으로는 해외자본의 유출입 규제가 거의 사라지면서 글로벌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동조화되는 경향이 높아졌고, 대내적으로는 소매금융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가계의 대출과 유가증권 거래 규모가 확대되어왔다. 그리고 이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촉진하는 금융적 기초가 되었다.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자본은 개방화와 자유화 정도가 매우 높아진 신흥시장인 한국 금융시장에 다양한 경로로 진출하여 한국 소비자 금융시장을 급 팽창시켰고, 은행과 보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을 통해 막대한 금융수익을 실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례하여 규모화와 겸업화를 내걸고 덩치를 키워온 국내 은행들과 외은지점들의 수익성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주가는 2007년 2000포인트를 찍고 시가 총액 기준으로 1000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한국 금융시장 변동의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가 외국자본이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가는 G20서울 정상회의가 열리던 지난 2010년 11월 11일 충격적인 옵션 쇼크 사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장 마감 10여분을 남기고 동시호가가 이루어지는 시간대에, 도이체 방크 런던 법인 통합계좌를 통해 헤지펀드로 추정되는 한 펀드가 한국 도이치 증권을 경유하여 매수차익거래로 무려 2조 3천억 원이 넘는 현물매도와 선물 매수를 쏟아내면서 순식간에 주가를 50포인트 이상 떨어뜨렸던 것이다. 이제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는 과거처럼 무역시장이나 기술 의존 관계보다는 금융시장에서의 의존도가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둘째로, 한국의 실물경제와 상품 무역에서 중국경제와의 연관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진 점이다. 불과 10년 전인 2000년만 해도 한국의 중국 무역 의존도는 수출이 10%, 수입이 8%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정확히 미국 의존도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 나마도 상당수 무역이 유력 대기업들의 핵심 제품이 아니라 열악한 중소기업들의 저가 상품 거래가 차지했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부차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특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한국의 전체 수출 가운데 25%를 대 중국 수출이 차지하게 되었다. 홍콩을 포함하면 무려 30%에 이른다. 그것은 이제 미국의 3배에 가까운 규모가 되었고 1980년대 말까지 미국이 누려왔던 절대적 수출시장의 지위를 중국이 대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세한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유력 대기업들 중심의 중국 진출과 중국 수출이 대 중국 무역을 주도하게 되면서 한 중 무역은 한국 실물경제 변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수입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 자본주의 역사 이래 언제나 최대 수입국이었던 일본마저 중국이 대체하게 되었다. 특히 한 중 무역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사내 유보율이 700%에 달할 만큼 막대한 자체 자금조달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에는 크게 좌우되지 않는 반면 중국경제의 성장 여부에 따라 기업 실적이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되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여, 200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금융경제와 실물경제가 이원화되면서 금융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었고 실물경제는 중국경제와의 연관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구조로 대외 지향적 경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국민경제라는 틀 속에서 실물경제와 금융경제가 정합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축을 향한 원심력 형태로 이원화된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성은 금융위기에 대한 한국경제의 대처 양상과 이후 회복 양상에도 그대로 특징이 드러나게 된다. 4. 미국 효과로 부풀려진 금융시장 활황, 중국 효과에 의지한 실물경제 회복 우선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08년 말 무렵, 한국경제는 개방화된 외환시장과 증권시장, 그리고 은행의 차입시장 경로를 통해 위기 충격이 가감 없이 전달된다. 환율 폭등과 주가폭락, 은행 대외차입 시장 경색이 현재화되면서 외국자본 유출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질주했다. 그런데 2009년 2분기 이후 경기회복세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반대 방향의 흐름이 뚜렷해졌다. 한국 금융시장으로의 자본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까지 매해 30조원 규모의 해외 자금이 증권시장에 유입되었고 채권시장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이 들어왔으며, 국내 은행의 차입시장도 신용경색이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환율은 하락세로 돌아서게 되었다. 특히 2010년 하반기 이후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발표 여파로 자본유입이 가속화되자 주가는 2000선에 육박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구가했다. 이제는 과도한 자산거품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고 유입된 외국자본이 또 다시 유출로 방향을 틀 경우 예상되는 충격을 대비해야 하는 실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다수 정책 결정자들과 매체들은 주가 2000 재 돌파에 환호하면서 한국 증시의 활황이 마치 한국경제의 탄탄함을 입증해주는 징표가 되는 것처럼 들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물경제로 주의를 돌려보자.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실물경제로 전이되자 한국경제도 곧바로 침제에 접어 들어섰지만 오래지 않아 강한 반전 국면으로 진입했다. 그것은 한국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풀려 은행들이 적극적인 신용공급을 재개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흔히 지목되는 요인은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와 환율효과이다. 부분적으로는 타당한 진단이지만 실물경제 회복 요인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환율효과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봐야 한다. 우리나라 원 달러 환율은 2008년 1100원대에서 2009년 1270원대로 올라감으로써 확실히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증대 효과가 있었으며, 주요 경쟁 상대국인 일본의 환율 하락이나 대만의 미미한 환율상승에 비해 유리한 효과를 누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2010년에는 환율이 반대로 1160원 수준으로 전년에 비해 100원 이상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30%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했던 것을 일반적인 환율효과로 돌릴 수는 없다.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증가는 2009~2010년 사이 매년 1%이상씩 수출비중이 커지면서 평균 수출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수출 확대를 가능하게 한 중국효과(China Effect)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2008년 상반기에서 2010년 상반기 2년 동안 한국경제 GDP성장률 4.2% 가운데에서 그 절반이 넘는 2.2%는 대 중국 수출이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3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우리의 외환보유고 확대 역시 대 중국 무역이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2010년 중국과의 무역수지 흑자는 390억 달러를 초과하면서 규모가 늘어나는 반면, 미국과는 겨우 76억 달러 흑자로 흑자폭마저 줄어들고 있고, 일본과는 -310억 달러 적자로 적자폭이 늘어나는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처럼 한국의 실물경제 회복과 성장에는 환율효과에 감춰진 중국효과가 작용했던 것이고 그 수혜를 주로 대기업이 입으면서 대기업 실적도 크게 호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의 대침체 가운데에서도 중국경제가 8~9%의 고성장을 지속시키면서 세계 경제규모 2위에 등극했던 효과를 인접 무역 상대국인 한국이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국 경제가 1% 성장하면 전 세계 국가들에게 3년 뒤에는 0.2%포인트, 5년 뒤엔 0.4%포인트 추가 성장 전이 효과를 낸다는 분석도 있을 만큼 현재 중국경제가 한국 경제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 중국 수출 비중 27%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대 중국 무역비중이 큰 중국의 인접 국가가 한국이다. 중국 효과가 그 어떤 나라보다 가장 크게 파급되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70%가 중국의 대외수출을 위한 중간재 형태이고 중국이 최종 소비지로 수출되는 비중은 아직 30%정도이기 때문에 중국 효과란 사실상 선진국 경제회복 효과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경제 침체로 제한된 세계 시장에서 한국경제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수출을 확대하는 문제와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등에 업고 수출을 확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또한 아직 제한적이지만 중국 내수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경제가 수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한국경제의 자생력 회복을 위한 경제개혁 과제 한편에서는 미국경제가 위기 탈출방안으로 내놓은 2차 양적완화 기류를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자금이 밀어올린 주가상승 분위기와, 또 다른 편에서 중국경제의 고 성장에 편승하여 늘어나는 수출로 얻는 경제 성장률과 무역수지 흑자에 도취되어 구조 개혁과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상황이 오늘의 한국경제이다. 한국경제의 취약한 체질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불안정한 대외변수가 만들어 준 기대 이상의 성적에 환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외변수에 기댄 양호한 실적들은 글로벌 경제의 재 둔화 추이로 인해 부정적 측면들이 확대되고 있다. 거시 경제 지표만 보더라도 2010년 상반기 국내 총생산이 전년 대비 7.6%였지만 하반기에는 4.6%로 추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이는 2011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선행지수를 포함하여 광공업 생산지수, 설비투자와 수출 동향, 취업자 수 동향 등 대부분의 경기 지표들도 거의 대부분 상승 보다는 둔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경제 역시 ‘짧은 회복, 재 둔화’라고 하는 글로벌 경제의 추이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외변수에 의해 창조된 성장 실적의 마취에서 깨어나 우리 경제의 실체를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대외적 변동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대외 요인이 언제까지나 한국경제에 우호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불안정하게 과열되고 있는 금융시장에 방화벽을 구축해 안전장치를 서두르는 것이 한국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긴요하다. 금융 산업이 현대 경제 발전을 위해 여전히 필수적인 영역인 것은 틀림없지만,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미래 성장산업이라는 발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발상아래 추진된 금융 개방화, 자유화 역시 긍정적 효과 보다는 부정적 문제점이 크다는 것이 공유되면서 신흥국들이 앞 다퉈 자본 유출입 통제(Capital Control)에 나서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2010년 11월 G20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가장 중요한 결론은 “변동환율제하에서 환율의 고평가가 심화되고 있는 신흥국들은 신중하게 설계된 거시건전성 규제 도입을 통해 대응할 수도 있다”는 대목일 것이다. 외환에 대한 거시건전성 규제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본 유출입 통제를 정당화해준 문구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자본통제로 방화벽 구축 -> 안전성이 확보된 금융시장의 공익적 성격 확대 -> 실물경제 지원 복원이 금융경제 개혁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 신흥국들이 취하고 있거나 예정인 자본 유출입 통제 구분국가(예상) 조치이미 도입브라질외국인의 자국통화 표시 채권, 주식투자에 부과하던 거래세율을 6%로 계속 인상인도네시아외국인의 중앙은행채권 매입시 최소 1개월 보유 의무를 부과태국외국인 채권투자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15%) 면세조치를 폐지대만유입된 외국인 투자 자금 중 대만 국채 및 MMF 상품 투자 비중을 30% 이내로 제한중국금융회사들의 차입규모 쿼터제를 더욱 철저히 준수하고 외화유입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추가 도입브라질거래세율 인상, 국채 투자에 대한 자본 소득세 부과 가능성인도네시아단기 국채에 대한 보유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추가 연장태국주식 투자 과세 등인도통화 당국은 부인중이나 시장에서는 규제 도입 가능성 전망대만국내 유입 자금 중 투자되지 않은 자금에 대한 fee부과 고려신규 도입말레시아중앙은행 총재, 필요시 해외자본유입에 대한 공동대응 시사콜롬비아통화 당국은 부인중이나 시장에서는 규제 도입 가능성 전망필리핀역내 NDF에 대한 규제강화 고려, 외채 구조 및 상환일시 변경 고려* 한국은행, “신흥시장 주가, 채권가격, 환율 강세의 배경과 정책 대응”, 2010.12둘째로, 한국 실물경제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 중 경제관계가 상호이익이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한 중 무역 의존도는 되돌릴 수도 없고 대체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2010년대 내내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 분명하다. 특히 중국효과는 무역뿐 아니라 국내 경제구조와 고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인데, 금융위기 이후 370만까지 떨어졌던 제조업 노동자가 최근 410만 명까지 회복되면서 경기상승과 고용흡수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중국효과와 연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대 중국 관계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저가 임가공이 퇴조하고 이후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주력 상품들의 생산기지로 변모했던 것처럼, 향후에도 빠르게 경제 무역관계의 형태가 변화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한국경제가 기술력과 자본력의 비교우위를 앞세워 무한 팽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처럼 중국시장이 간주되었지만, 언제까지나 중국이 시장을 내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격차가 줄어들거나 역전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다. 조선업의 사례에서 이미 그 단초가 나타나고 있고 중국이 최근 외자에 대해 베풀었던 대부분의 특혜를 철회하면서 외자 의존도를 줄여가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산업전망과 무역전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 중 경제 전략이 필요한 지점이다. 특히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며 인접국가로서 중국 경제는 적어도 생산과 무역 면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지대로 떠오르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한 축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고 있다. 향후 한국의 실물경제는 글로벌 차원 이전에 ‘아시아 속의 한국경제’라는 구조 틀, 특히 한 중 경제 관계라는 구조에 의해 규정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이에 비하면 정부가 그토록 많은 양보를 통해 타결한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주는 영향은 부차적인 것이다. 또한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이 입증해주고 있는 것처럼, 현재의 중국 효과는 일부 대기업과 정규직 이상으로 수혜의 범위가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대기업들의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이 늘어나면서 국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대 중국 경제 전략이 일부 대기업만의 ‘황금 시장’이 아니라 다수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국가가 나서서 대중 경제 전략을 펴야 하는 이유다. 한미 FTA 변수가 아니라 중국 변수를 고려한 한국경제의 산업구조 개혁과 무역구조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의 미국변수와 실물시장에서의 중국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대외적인 호조건 그늘에 감춰진 국내 경제의 허약 체질은 예상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를 통 틀어 한국의 내수시장은 금융업 – 건설업 -부동산 시장이 서로 얽히면서 주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지금도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짓누르고 있는 3대 악재, 즉 고용의 양과 질 악화, 가계 부채의 증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충격 우려를 안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겪은 2009~2010년 2년 동안 고용은 연 평균 10만 명 남짓밖에 늘어나지 않았으며, 반대로 가계 부채는 2008년 말 688조원, 2009년 말 734조원으로 늘었고 2010년 9월말까지는 다시 770조원으로 불어났다. 소득 여력과 차입 여력이 소진된 국민들이 더 이상에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 수 없기 때문에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하락세를 피할 수 없으며 ‘집 있는 빈곤층’이라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그간의 중산층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건전한 국내경제 체질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건설, 부동산을 엮는 개발방식을 접어야 한다. 대신 중소기업 중심의 제조업 기반을 확충하고, 영세 자영업을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발전적으로 유도하며, 절대 취약 분야인 사회서비스를 산업적 중추 분야로 육성해야 한다. 금융위기 와중에서 사회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일회성 예산지원이나 의료산업 개방화나 민영화처럼 신자유주의적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 한국 내수의 주력 산업이었던 건설업을 대체하는 주력산업으로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익적 성격을 살려 육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