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고통 04 – 마침내……, 길을 잃다


 


 


  어둠은 소름끼치도록 날선 바람을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날마다 그 길이를 더했고 길어진 만큼 깊어졌으며, 끝내 세상을 뒤덮었다.


 


  2010년 대한민국은 매 순간이 전시였고, 도처가 지뢰밭이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단 한 순간도 가쁜 숨을 돌릴 틈 없는 불안한 하루를 이어가야 했다. 운 좋게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을 비껴낸 사람들조차 결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여유 따윈 없어 보였다. 그저 창백한 얼굴로 저마다 선 자리에서 악몽 같은 한 해가 어서 저물기만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다음해라고 해서 별 뾰족한 수는 없는 듯 보여서 더 끔찍했다.


 


  세상은,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더 비겁해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잔인해질 수 있으며, 또 얼마나 더 탐욕스럽고, 비열하며 추악해질 수 있을까? 지난 1년은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그 모든 것의 한계를 깨온 듯 보였다.


 


  천안함의 침몰 소식은 사람들을 느닷없는 전쟁의 공포로 내몰았다. 매번 바뀌는 정부당국의 발표로는 그 진위를 헤아릴 수 없었고, 그저 1번 매직의 흔적만이 결코 현 정부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줄 뿐이었다.


 


  생존을 위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용산의 세입자들은 끝내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 한을 풀지 못한 비통한 넋들은 허망하게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남일당 건물은 헐렸다. 정권의 추악한 욕심과 행정당국의 무책임은 철거된 잔해와 뒤섞여 묻혔고, 그 위로 무참히 찢겨진 진실이 흙먼지로 떠돌았다.


 


  과대포장 된 G20을 위해 국민들의 기본권은 철저히 유린되었으며, 정부는 ‘국격’이라는 해괴한 이유를 들어 그 천박함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정부와 군대의 무책임한 대응은 한국전쟁 60년 만에 폭격으로 인한 사상자를 내었고, 이 좁은 땅 덩어리는 다시금 전쟁의 공포로 내몰렸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현재 피난 아닌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더 이상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세태를 반영한 듯 재벌가의 한 핏줄은 한참 연배의 노동자에게 매 값을 매기고는 끔찍한 폭력을 가했다. 더 이상 인간이 같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치가 떨렸다.


 


  헤일 수 없는 메마른 팔뚝질로는 더 이상 아무런 소통도 기대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런 까닭에 여전히 어떤 이들은 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야 했다. 그럼에도 별 다른 희망을 갖지 못하는 것이 이 사회의 현주소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으며 몸서리쳤다.



 


  그 모든 혼란과 치욕의 와중에서도 굶주리는 아이들의 밥값에 침흘리는 정부여당의 폭력은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고 신속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해서 더 무서웠다. 여당의 대변인은 그 모든 일들이 역사의 정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말 아닌 말을 쏟아냈다.


 


  쉼 없이 더듬거리며 지나온 2010년, 이 땅 어디에서도 어둠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였다. 여전히 나는 아무 곳도 가보지 못했고, 갈 수도 없었으며, 겨우 다다른 이곳은 처음 출발한 그 자리였다. 마침내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에서 내려온 짜라투스트라가 처음 만난 건 줄 타는 광대였다. 아찔하고 위태로운 우리의 삶은 흔들리는 줄과 더불어 바람 앞에 무방비로 흔들렸다.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의 경계에서 차마 미쳐버리지도 못하고 그저 피에로처럼 피눈물을 흘리며 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