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By | 2010-11-18T10:53:51+00:00 2010.11.18.|

‘과학’이라는 개념의 정의는 확실하지 않다. 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성격을 두고 지난 100년간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만들어졌을 만큼, 과학의 본성에 관해 합의된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식이 존재한다.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과학은 ‘확실성’ 혹은 ‘객관성’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확실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자연의 비밀을 들추어 내는 것, 물론 그것도 과학 활동의 중요한 본성 중 하나임엔 틀림이 없다. 과학의 ‘확실성’과 ‘객관성’에 대한 강조는 주로 과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는데, 이제 그 역할을 정부가 대신해 주려는 것 같다. 광우병과 연이은 촛불시위를 ‘과학적 권위’의 이름으로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합조단의 보고서가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과학적 결론’이라며 우리에게 정부의 발표를 믿고 의심하지 말라고 종용한다. 그 결론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념적’이며, 따라서 ‘과학적’이지 않단다. 합조단 조사단장의 말이다.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냐”며 대중을 매도하는 장사꾼이 나오더니, 이제 “과학도 이념적으로 하냐”며 우리를 매도하는 과학자가 등장했다. 과학이 이념에 희생당한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소련의 ‘리센코(Trofim Denisovich Lysenko, 1898-1976) 유전학’이다. 리센코라는 학자가 공산주의의 이념에 맞는 라마르크식 유전만을 인정하고 멘델식 유전을 소련에서 연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부는 과학적인 합조단의 결론을 의심하는 몇몇 대중과 학자들이 이런 공산주의 이념에 물든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그래서 합조단의 결론을 의심하면 우리는 빨갱이가 된다. 게다가 합조단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으니, 이에 대한 의심은 곧 그의 이념적 색깔을 드러내는 반국가적 행위가 되는 셈이다. 졸지에 우리는 비과학적이고, 반국가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리센코 논쟁은 과학이 이념에 의해 오용되었을 때, 얼마나 심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필자가 가장 경멸하는 과학의 왜곡은 따로 있다. 미국이 우생학을 이용해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이민법을 통과시킨 사건이다. 자 이제, 이념에 의해 악용된 과학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물들어 버렸다. 그것을 의심하면 반자본주의자 혹은 반민주세력이 되는 건가? 합조단 단장이 이념을 이야기했을 때, 아마 그것이 공산주의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당연히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각각의 이념이 아니라, 이념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과학사를 통해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과학이 국가라는 권위에 의해 오용될 때 나타나는 비극일지 모른다.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의심과 반대가 허락되지 않는 과학은 결국 왜곡되기 마련이라는 소박한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 1924-1994)는 과학과 정치의 결탁이 가져올 폐해를 정교분리에 빗대어 설명한 것인지도 모른다.”과학이 무엇인가”, “과학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들은 풍부하고 다양하다. 근대 서구 유럽의 합리성이 낳은 산물이라는 시각에서부터, 과학도 다른 지적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정의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고민해왔고, 여전히 그렇다. 기능주의라는 과학사회학의 한 분과를 창시한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1910-2003)은 과학활동의 제도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과학활동은 과학자 사회가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어떤 가치체계들에 의해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보편주의(universalism), 공산주의(communism), 공평무사(disinterestedness), 그리고 조직화된 회의주의(organised skepticism)로 정식화된 그의 네 가지 분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학의 본성, 혹은 과학이 과학이기 위해 갖추려고 노력해야 하는 규범들을 잘 드러내 준다. ‘보편주의’란 “진리 주장은 과학자 개인의 인종, 국적, 종교 등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는 보편적 기준들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란 “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과학자 공동체 모두에 의해 공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의 가치규범에 공산주의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겠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그런 빨갱이들의 공산주의는 아니니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공평무사’란 “과학자들의 작업 결과는 동료 과학자들의 엄정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조직화된 회의주의’란 “과학적 신념들은 경험적 및 논리적 기준들에 의해 사심 없이 검사되어야 한다”라는 뜻이다.머튼의 명제가 과학활동의 본성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과학적’이라는 개념이 불러 일으키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는 충분한 것 같다. 다른 모든 규범들은 제외하고 ‘조직화된 회의주의’만을 생각해 보자. ‘과학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합조단 단장이 주장하듯- ‘확실성’ 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이 성립하기 위해 끊임없는 의심과 반박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의 조사를 의심하지 말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과학자들에게 사회적 권위는 과학적 진실 앞에 언제나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나이와 성, 인종과 계급 그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결론을 의심하는 태도를 강요 받는다. 조직화된 회의주의야말로 과학을 과학답게 만드는 가치다. “의심하지 말라”는 말은 종교에서나 쓰는 교리다. 도대체 누가 ‘과학적’인가? 도대체 누가 과학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가? 도대체 누가, 이념으로 과학을 재단하려 하고 있는가?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종교는 신념의 문화이며, 과학은 의심의 문화”라고 말했다. 하버드 대학의 총장이었던 제임스 코넌트(James Bryant Conant, 1893-1978)는 “교과서에서만 과학을 배운 이들이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신화를 만든”다고 했다. 반증주의로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는 “우리는 과학을 완성된 지식체계가 아니라, 진행중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부르짖었다. 특히 그는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는 소박한 상식을 주장했었다. 과학자로서 또 철학자로서 위대했던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은 과학에 도그마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그런 고민들 속에서 볼츠만은 자살했다.그러니 의심하게 하라. 의심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1 개 댓글

  1. bj971008 2010년 11월 19일 at 1:37 오후 - Reply

    우리 사회는 과학 뿐만 아니라 법,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파쇼적인 사고를 강요당하는 것 같습니다. 가스통 할배들이야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아이로부터 어른들까지….
    아마 언론 등의 영향이 클테죠.

    “종교는 신념의 문화이며, 과학은 의심의 문화”라는 표현이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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