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일기 3

By | 2010-11-16T10:37:19+00:00 2010.11.16.|

2010년 11월 어느날기부스? 깁스?수술 후 5일째.수술 부위의 통증은 없지만 어디에 부딪히거나 움직일 때는 살짝살짝 아픈 기운이 있을뿐 대체로 괜찮다. 입원하고부터 수술 후 며칠 될 때까지는 스플린트(Splint)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처음에는 휠체어 바퀴를 돌리고 회전하는 게 너무 어려웠지만 이제는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서도 방향을 180도 바꿀 수 있을뿐더러 병원 복도에서도 쉽게 ‘코너링’을 하며 다닐 수 있다. 웬만한 경사도 가뿐히 오르거나 속도 조절하면서 내려갈 수도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장애인월드컵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오후에는 병동 치료실로 가서 수술 부위 드레싱을 하고 스플린트를 없애고 캐스트(Cast)로 고정을 하게 됐다. 그런데 내게는 수술 말고 또 다른 공포감이 밀려왔다. 캐스트란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깁스를 얘기한다. 나의 경우에도 5주 이상은 해야 한다는데 문제는 그 동안 절대 풀 수 없다는 것과 가려워도 긁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고통은 겪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스플린트 사진정형외과 용어에는 재미있는 게 많이 있다. 지금 내가 하게 되는 캐스트가 그 예이다. 우리가 다리를 삐거나 골절 등 정형외과적인 문제가 있을 때 임시로 고정시키는 것을 ‘반깁스’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부목(副木)을 뜻하는 말로 영어로 표현하면 ‘Splint’라고 한다. 완전히 감싸지 않고 절반만 감싼 채로 임시로 고정시킨다고 해서 부목, 혹은 반깁스라고 오래전부터 써왔던 말이다. 오늘 새로 하게 된 캐스트는 완전히 손상된 부위를 감싼다고 해서 흔히 ‘통깁스’라고 한다. 나도 의사가 되기 전에는 깁스란 말을 많이 썼고, 왠지 ‘기부스’라고 어르신들이 하는 말보다 유식해 보였다. 정형외과를 배울 때 그 어원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했는데, 영어가 아닌 많은 의학용어들처럼 깁스라는 말도 독일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 우리가 일본을 통해서 의학을 배웠고, 일본은 그 당시 의학의 선두주자였던 독일에서 의료에 관한 많은 지식들을 전수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독일어 사전을 찾아보면 깁스(Gips)는 간단히 석고(石膏)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의료에 관해서 쓸 때는 ‘석고붕대’를 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반드시 석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로 나무를 사용하기도 하고, 기술이 발달해서 플라스틱이나 여러 가지 재질을 사용하면서 편하게 고정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임시로 뼈나 인대 등을 안정시키는 장치를 통틀어서 ‘부목(副木)’이라고 쓰며, 영어로 스플린트(Splint)라고 하게 되었다. 한자에 ‘나무 목’자가 들어가듯이 영어도 사실은 넓적한 나무란 뜻이다.통깁스라고 하는 것도 과거에는 석고를 일일이 발라서 둥그렇게 완전히 감싸는 모양을 했는데, 그러다가 석고를 바른 붕대가 나오더니, 요즘은 질긴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해서 두루마리처럼 감아진 제품이 나오게 되었다. 영어로는 캐스트(cast)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주물 또는 거푸집이라는 말로 과거에 석고로 다리나 팔을 감싸던 모양이 거푸집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깁스면 어떻고, 기부스면 어떤가. 스플린트나 캐스트란 말을 모르면 어떤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이기 때문에 반깁스나 부목, 통깁스라고 쓰면 무난할 것이라고 본다.장애인 체험드디어 퇴원.캐스트는 발끝부터 허벅지 윗부분까지 해서 완전히 고정을 했고, 수술 상태도 괜찮아서 다소 일찍 퇴원을 했다. 겨우 익숙해진 휠체어 대신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는데, 처음이라 중심 잡고 다니는 게 영 쉽지가 않다. 목발도 과거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요즘은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어서 가볍고 가지고 다니기 좋다.통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필자의 하반신 모습가운데 붕대로 감은 것은 무릎 소독을 하기 위해서 일부 열어놓았기 때문이다.병원 밖을 나왔더니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두 손은 말짱하기 때문에 밥 먹는 것은 쉬운데, 그것 빼고는 일상 활동 전체가 어려움이다. 잠자는 것부터 일어나서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어려움의 연속이다. 한쪽 다리를 구부리지 않고 곧게 편 상태에서 1시간만 다녀보면 이 상태로 움직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다리를 구부릴 수 없어서 머리 감는 것, 바지나 양말을 벗거나 입는 것까지는 힘들지만 겨우 할 수는 있다.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하면 양쪽에 목발을 한 채, 손으로 커피잔을 들고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부엌에서 끓이고, 바닥에 놓고 내 책상까지 끌며 와야 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가장 어려운 일은 밖에 다니는 것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다.집에 있으면서 부인이 없을 때 음료수가 먹고 싶어서 가게에 가려고 나왔다. 평소에는 안 보이던 계단들이 왜 그리 많은지…..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위험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100m도 채 안 되는 가게가 그렇게 멀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도착했을 때는 겨울 초입인데도 등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문제는 올 때처럼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목발을 겨드랑이에 걸친 채로 음료수를 손에 잡고 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임시 장애인이지만 장애를 가지고 생활을 해보니까 세상은 너무 위험하고, 살기에 어려운 구조로 가득 차 있었다. 가게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불편한 것은 아주 약과이다. 건물의 회전문이나 여닫이문을 이용하는 것,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것,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들은 사실 목숨을 걸고 이용해야 하는 장치들이다. 한번은 어떤 건물에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를 못 찾아서 가까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가 타는 시점에 헛디뎌서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회전문이나 에스컬레이터는 장애인이 이용할 때 조금 속도를 늦출 수 있게 조절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후기이제 2주 정도 더 지나면 이 답답한 깁스를 풀고, 보조기를 차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다치고 나서의 한 달은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 되었고, 두 다리를 딛고 다닌다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더 없이 느껴보는 시간들이었다.병원에도 나가서 조금씩 진료를 해보는데 환자들도 다르게 보인다. 바쁜 시간에는 환자들이 뭘 물어보려고 해도 말을 끊고, 내 할 얘기만 하면서 빨리 나가게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충분히 얘기도 나누려고 하게 됐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 또한 의사나 간호사와 얘기하거나 불편을 해결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고, 힘들었는지 알기 때문이다.고병수 @DOGURRI (트위터) bj9710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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