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30분 새사연 놀이터…


책은 논쟁이 없는 시대의 논쟁…


양이 넘 많으니 5부분 중…두가지, 즉 리얼리티 TV 와 맞춤아기에 대해 떠들어 봅시다..


 


흠… 책의 소개는 이하…


 


2010/08/11 22:30












시장에서, TV 토론에서, 그리고 인터넷 토론방에서 말들이 넘쳐난다. 시끄럽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우리 사회에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서로 다른 입장들이 존재하고 그 입장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논쟁을 통해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입장에 대한 변주들이 토론으로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입장이나 목소리는 합리적인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敵)으로 간주될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논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설령, 다른 입장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열린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고 해도 논쟁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이 논쟁을 해서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중요한 주제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령 주제가 주어져도 근본적인 논쟁의 포인트를 찾지 못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피상적인 말싸움에 멈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에서 또는 더 나아가 정치 일반에서, 관점들 사이의 교류는 단순한 합의를 명목으로 경시되고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소신도 뒤바뀔 수 있는 ‘정쟁’의 주제가 될 뿐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원칙의 문제를 놓고 논증하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대학에 팽배해 있는 상대주의적 통설은 마치 어떤 논증도 우월하지 못한 것처럼 모든 시각을 찬양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설적으로 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의 권위가 더욱 커지고 대중들은 선동에 휘둘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논쟁 없는 사회’를 그냥 두어도 좋은가? 그렇지 않다. ‘논쟁 없는 사회’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워 질병의 나락으로 빠지기 쉽다. 원칙을 확인하면서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논쟁은 사회의 지적 자원을 풍부하게 늘리는 역할을 하며 그 사회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과잉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으며 목적을 숨긴 대중 선동에 취약하다. 사람들은 ‘허구로 만든 진실’에 쉽게 미혹되고 이내 냉정함을 잃는다. ‘정쟁’은 허다하지만 ‘논쟁’이 없기 때문이다. 논쟁은 없고 승패만 있는 사회에서는 힘을 얻기 위한 눈먼 열정만 자극한다.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고 그 목소리 하나하나에 서로가 귀를 기울이는 사회, 합리적인 목소리가 통용되는 사회, 말 그대로 다원화된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논쟁’이다.


 



여기에서 선정 논쟁의 주제는 리얼리티 TV, 윤리적 관광, 동물실험, 대체의학 그리고 맞춤아기라는 다섯 가지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논자들을 4~5명씩 찾아 토론회를 조직했다. 이 책은 그 토론회들의 결과물인 셈이다.


 


‘리얼리티 TV’는 이제 막 우리 사회에서 사회 현상으로 등장했고 단편적인 비판은 있으나 본격적인 토론이 이루어진 적은 없는 주제이다. 연예인이 보통사람처럼 등장하거나 보통사람들이 직접 화면에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의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있다. 특히 주말 저녁이 되면 방송 프로그램은 온통 ‘리얼’을 지향한다는 표제어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진지하게 따지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리얼리티 TV를 둘러싼 논쟁이 원리적으로는 ‘진실’과 ‘실제’를 둘러싼 심오한 철학적 논쟁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상대주의의 위세가 대단한 이 시기에 ‘진실처럼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윤리적 관광’은 그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휴가철이면 서울이 텅 비고 세계의 오지 구석구석까지 소개하는 여행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현실을 보라.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여행은 일상화된 듯하다. 그렇지만 외국에서의 한국인들이 벌이는 추태에 대한 사회면 기사를 통해서나 가끔 생각할 뿐, 그 행위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이나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좋아 내 돈으로 가는 여행에서 그곳 사람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는 있을까? 독재 국가를 여행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인가? 내가 안기고 싶은 자연을 찾아 떠나는 것이 결국 그것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나는 여행을 그만두어야만 하는가?


 



‘동물실험’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그 자체에 반감을 갖는 사람의 숫자도 제법 될 같다. 하지만 동물권이라니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인가? 개고기를 먹는 습관을 비난하는 몇몇 배부른 서양인들의 잠꼬대 같은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고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인간과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체의학’과 관련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동서양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만한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이 논쟁을 진부한 것이라 지레 짐작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하지만 장담하건데, 제도화된 의료 서비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의료의 범위와 내용과 관련된 철학적?실천적 고민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공적인 영역에서 토론의 주제가 된 적은 없다.


 



‘맞춤아기’와 관련된 논쟁에는 기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사회의 기준을 마련한다는 훨씬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맞춤아기라는 용어는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인공수정 등의 과정에서 유전형질을 골라냄으로써 또는 조작함으로써 부모가 바라는 대로 아이를 ‘디자인’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치명적인 유전질환 등을 피하기 위해 착상이 되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여 임신중절이냐 출산이냐를 결정하는 과정도 포함한다. 아기를 ‘맞춤’으로써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생명들이 수정란 상태에서 이미 폐기되며, 이는 바로 장애인 등 소위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한 배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면역력이 더 뛰어나고 지능이 더 우수하고 체격이 더 우월한 아기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있는가?


 



이 책은 논쟁의 주제를 잡아내는 법, 논쟁과 관련된 정보, 논쟁을 하는 방식, 그리고 논쟁과 관련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쟁점들을 다루는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한 시도로 기획되었다.


이 열린 논쟁의 문화가 널리 퍼져,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좀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 사회의 지적 풍토를 제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엮은이: 영국사상연구소


 ?옮긴이: 박민아?정동욱?정세권


 ?책  값:  25,000원 (5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