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사람이 목을 맸다. 자살률 세계 1위인 탓일까. 그의 자살도 묻히고 있다. 쉰 두 살. 그가 마지막 숨을 쉰 곳은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의 국회는 물론, 정당들이, 방송사들이 즐비한 곳이다.그는 나무에 목을 맨 싸늘한 몸으로 아침 일찍 발견됐다. 빈 소주병과 유서만 남겼다. 여의도 가로수 불빛 아래 밤을 지새우며 썼을 유서에는 지상에서 그의 유일한 핏줄인 12살 아들을 ‘부탁’하는 글이 담겼다.“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장애아들 ‘혜택’ 받게 해 달라” 유서 남겨하루에 40여 명이 목숨을 끊는 자살 공화국에서 새삼 그의 죽음 앞에 값싼 감상으로 다가설 뜻은 없다. 다만 묻고 싶다. 왜 서울 가리봉동의 단칸방에 살던 그가 여의도 한복판까지 와서 나무에 목을 맸을까.고아로 큰 그는 온갖 시련을 넘어 건설 현장의 비정규직 용접 노동자로 살았다. 마흔 살에 아들을 보았을 때, 고아로 컸던 그의 기쁨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은 짧았다. 5년 전부터 일을 찾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토목사업은 큰 건설사들의 배만 불리고 있을 뿐이다. 동거했던 아내도 ‘가출’했다. 행여 손가락질 할 일이 아니다. 그와 동거하기 전에 딸 둘을 키우던 그 여성도 살 길을 찾아야 했다.그가 목을 맨 결정적 계기는 아들이 아프면서였다. 왼쪽 팔이 마비되고 가끔 발작이 나타났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뇌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이 나와 치료비만 300만원이었다. 아들을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치료와 함께 월 10만~20만원의 장애아동양육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동사무소 분들”을 만났지만 “근로능력”이 있는 자신 때문에 그조차 받지 못한다는 답을 들었다. 유서 마지막에 그는 “아들아 사랑한다”고 썼다.기실 그의 슬픈 죽음은 이미 예고되었다. 현재 18세 미만 장애자녀가 있는 가족의 29%는 월 평균 가구 소득이 15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이다. 장애아동의 의료비, 재활치료비, 특수교육비가 월 평균 34만여 원이라는 사실에 비춰본다면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장애아가족아동양육지원사업’은 18세 미만 장애아동의 0.9%인 688가구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래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여일 단식농성을 하며 49명이 집단 삭발로 이명박 정권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장애인 부모연대의 삭발과 단식 외면한 정권물론, 그들의 간절한 요구를 이 정권은 살천스레 외면했다. 그 결과다. 50대 실직 노동자는 목을 맸다. 가리봉동에서 여의도까지 와 목을 맸지만, 힘깨나 쓰는 정당들과 국회는 조용하다. 진보정당은 힘이 약하고 게다가 갈라져있다.고아였던 그가 아들을 고아로 남기며 ‘장애인 수당’을 부탁한 비극은 왜 우리시대에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이 절실한 과제인가를 웅변해준다.기실 ‘여의도 정치’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고백하거니와 나 또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준)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전에 무릎 꿇고 무능과 게으름을 사죄하고 싶은 오늘이다. 그가 목을 매기 직전에 그의 고통스런 가슴을 적셔주었을 소주 한 병이 차라리 고맙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