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사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들의 줄사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먼저 김태호 총리 후보가 사퇴했다. ‘비리 백화점’으로 질타 받던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도, ‘쪽방촌’에 투기했던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도 곧이어 물러났다.빗발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기실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도 청문회를 보며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지 않았던가.그래서다. 더러는 한국 정치가 한 걸음 전진했다고 진단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론이 진정성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국정치는 과연 한걸음 더 나아갔을까하지만 냉철하게 바라볼 일이다. 청와대와 수구신문의 ‘진정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옳다. 새삼 말할 나위 없이 김태호-신재민-이재훈은 이명박 대통령이 ‘발탁’했다. 청문회 초기에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청와대는 이미 알고 있는 문제라고 제법 당당했다. 비단 청와대만 뻣뻣하지 않았다. 어느 후보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미 청와대 검증팀에 스스로 알렸다고 가소롭다는 듯이 언죽번죽 밝혔다. 이 대통령이 불거진 의혹을 대부분 알고도 내정했다는 ‘증거’들이다.물론, 대통령은 8월23일에 앞으로 공직 인선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판 여론의 소나기를 피해가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비단 청와대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어떤가. 한나라당 대표 안상수는 청문회를 보며 “과거를 추적하는 과거 지향적 청문회”라고 눈 흘긴 뒤 “앞으로는 능력, 비전 등을 알아보는 생산적 청문회가 되길 바란다”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말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정책 검증을 제대로 못하고 의혹을 늘어놓고 있다”고 ‘개탄’했다.그랬다.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김무성 원내대표는 줄사퇴한 저들을 내내 감싸고 있었다.줄사퇴한 자들 감싸던 대통령-한나라당 대표그렇다면 신문은 어떨까. 언제나 한나라당을 두남두던 신문들의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동아일보> 사설이 그들의 의중을 확연히 드러내준다. 청문회가 진행되던 8월25일 이 신문은 “문제는 이런 실망감이 현 정권에 대한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민의 뇌리에 ‘보수정권=부도덕’이라는 인상을 깊게 할 우려가 높다. 그렇게 되면 정권 재창출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권재창출이 위험해진다는 위기의식은 다른 신문에도 곰비임비 나타났다.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분명하다. 저들은 결코 ‘자진사퇴’한 게 아니다.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수구신문이 위험 신호를 보냈고 대통령부터 한나라당 대표-원내대표까지 슬금슬금 바뀌었을 뿐이다.그 과정을 톺아보면 저들의 목표는 결코 깨끗한 정치가 아니다. 정권재창출이다. 경찰청장 후보 조현오가 끝까지 버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다. 나는 청문회를 통해 일어난 줄사퇴를 자진사퇴라고 읽지 않는다. 다만 한국정치의 지각변동, 그 가능성을 진단할 수는 있다. 저 부라퀴들조차 여론을 모르쇠할 수 없다는 진실을 우리 모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자명하다. 여론의 뿌리인 민주시민들이 더는 정치의 객체로 머물 게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옳다. 힘을 모아 아래로부터 한국 정치를 바꿔간다면, 저 두꺼운 정치판의 지각도 쪼개질 게 틀림없다. 줄사퇴에서 우리가 얻을 슬기다. 덧글: 2010년 8월31일 저녁 7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줄임말 시민회의) 발기인대회>가 열립니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