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료하는 동네병원의 환자들을 분류해보면서 두 번에 걸쳐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있다. 전에 쓴 것들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잊어버렸다면 다시 이전 내용을 찾아서 봐줬으면 한다. 어느 하루의 사례였지만 모든 진료의 표본이라고 봐도 되고, 그것은 또 다른 동네병원의 모습과도 같다고 봐도 된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즉 너무 많은 진료 남발이 되고 있고, 이것은 의사들이 바라서 그런 것도 아니라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이며, 환자들도 별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병원 이용의 남용동네병원이든, 대학병원이든 우리나라의 외래진료 이용 횟수는 전 세계에서 1등이다. 너무 많이 아파서 병원 이용률이 높은 거라면 할 말이 없겠는데 사실은 제어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파서 병원 가는데 왜 막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안 가도 될 병원을 자꾸 가는 것은 스스로 병을 치유하는 노력을 없앨 뿐더러 국가나 가정에서의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기 때문에 ‘악’이라고 할 수 있다.외래 이용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의 의료비 상승률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아래 그림을 보라. 고만고만한 산을 주변에 두고서 홀로 우뚝 선 에베레스트산 같지 않은가?그림 . OECD 국가의 국민의료비 증가율 (02-06년, 5년간 평균 증가율, 단위%) (출처: OECD Health Data 2009 / 이재호 카톨릭의대 교수)다른 그림을 소개해 본다. 1. In Canada, the number of doctors only includes those paid fee-for-services to be consistent with the data on consultations. 2. In France, estimates of consultations in hospital out-patient departments have been added for more complete coverage.그림 . OECD 국가 의사 1인당 연간(2007년 사례) 진료건수 (출처: OECD Health Data 2009 / 이재호 카톨릭의대 교수) 위 그림에서도 유독 고층건물처럼 솟아오른 그림을 보게 된다. 바로 ‘의사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건수’이다. 우리와 자웅을 다투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인데, 그들이나 우리는 주치의제도를 하지 않고 있고, 행위별수가제 국가라는 것을 참고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귀찮지만 하나만 더 보자. 세계에서 우리가 일, 이등을 하는 게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그림 .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빈도(2007년) (출처:OECD Health Data 2009 / 이재호 카톨릭의대 교수) 이 그림은 아까와 반대로 국민들이 1년 동안 외래 이용을 얼마나 했는가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역시 일본과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탑’에 위치한다. 내가 3회에 걸쳐서 이런 내용에 천착하는 이유를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우리 국민들이 외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프기 때문에 병원을 더 많이 이용하는 걸까? 아니면 의사들이 환자들을 꼬드겨서 더 많이 오게 하는 걸까? 도대체 이런 기현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무분별한 병원 이용은 의료비 상승을 낳고, 의료비 상승은 결국 국가 경제를 좀 먹게 된다. 하지만, 의사로서 더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중증 환자라든지, 암환자 등에게 들어가야 할 의료비가 잦은 병원 이용으로 빠져나가버린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즉 감기 환자나 가벼운 질환에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정작 더 필요한 질환에는 많은 비용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를 보면 1년 감기 진료비가 암 환자 진료비와 맘먹는다. 주변을 돌아보라. 누가 큰 병에 걸리면 아직도 우리는 집안 기둥뿌리 하나 뽑아야 한다.해결책은 ‘주치의제도의 공론화’에 있다아무런 통제가 없는 우리나라의 의료 이용 체계가 문제이다. 환자들은 값싼 2분 진료 속에서 불안해서 자꾸 병원 문턱을 드나든다. 의사들도 오는 환자 막을 마음이 없다. 당연히 수입과 직결되니까.무분별한 병원 이용, 노인인구의 증가, 새로운 의료기술 등은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게 되고, 의료비 재정을 줄이려는 정부는 고민이고, 의사들은 팔짱만 끼고 앉아 있다. 국민들은 이 위급한 상황을 잘 모른다.국민들이 2분 진료가 아니라, 넉넉하게 상담도 하면서 원하는 만큼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병원 이용도 줄어서 국가적인 재정 부담도 덜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주치의제도’이다. 정부나 의료인, 전문가들 모두 이 주치의제도가 많은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인 것을 안다. 하지만 안 하고 있다. 왜? 의약분업 사태나 의료법 파동으로 크게 데인 정치인들, 김대중 정부 이후 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게 되고, 새로운 의료 정책으로 인해 수입이 줄까봐 두려워하는 의사들, 잘 모르니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국민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프랑스, 네덜란드, 영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자기네 나라의 의료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오래 전부터 개혁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손 놓고 있다. 제발 이제는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도록 하자. 위에서 봤듯이 질 좋은 진료를 통해서 외래이용이 줄면 그 만큼 의사들 수입을 보장해 주면 되니까 의사들도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정부도 그다지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므로 불안해하지 말고 용기 있게 의사협회에 제안을 해야 한다.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안착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아마 지난 시절, 너무 서두르다가 주치의제도가 낭패를 봤을 수도 있다. 지금 정부에서는 많은 의료문제와 더불어 주치의제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논의하는 시늉만 해도 성공이다. 이러한 논의와 공론을 바탕으로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각 당에서 서로의 의료개혁 방안을 국민들에게 선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 의료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이것을 시행하기까지도 다시 1, 2년이 걸리게 된다.우리 이명박 대통령님은 기업 프랜들리할 뿐만 아니라, 의협과도 프랜들리하니까 잘만 ‘통’하면 이런 논의체 하나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10년 동안 정부와 의협은 대화가 없었다고 하는데 바로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협회를 찾아가 대담을 나누었고, 의료 전반의 문제들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정말이다.고병수 bj97100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