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 효과’는 감세정책에 불과“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 이른바 ‘낙수효과’라는 경제학의 용어로 인식되곤 하지만, 애초부터 이 단어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낙수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대기업이나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혜택을 정당화하는 것이고, 경제발전의 내용보다는 GDP라는 지표 상의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경제학에서 관련된 이론을 굳이 찾자면, 적정세율을 구하는 래퍼(Laffer)곡선에서 관련성을 발견하게 된다. 최고세율을 낮추면 단기적으로는 재정수입의 감소로 나타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여 재정수입의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이 신봉해 왔던 래퍼곡선조차도 1980년대 한번, 2000년대에 또 한번 미국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레이건 정부와 부시정부 시절 실시했던 대규모 감세정책은 재정수입의 확대는커녕 현재와 같은 구조적인 재정적자를 만든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낙수 효과가 실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은 아무도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단지 신자유주의를 출범시킨 바로 그 정부, 레이건정부가 감세정책을 실시할 때 정치가들이 주로 인용했을 뿐이다.갤브레이스라는 학자는 이른바 ‘낙수효과 경제학’이 이미 19세기에 시도된 적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는 ‘말과 참새 이론’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말에게 여물을 많이 먹이면 부스러기가 길에 떨어져 참새가 주워먹게 된다는 것이다.정부의 대기업 압박, 감세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낙수효과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최근 정부가 ‘대기업 때리기’에 나섰다가 전경련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을 목격하게 된 탓이다. ‘성장주의’와 ‘감세 정책’을 신념의 수준으로 받아들여 온 정부로서는 현재 시점에서 낙수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을 터이다. 지표 상의 경기회복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부자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기업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쳤는데 여전히 중소기업과 가계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왜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정부는 그 이유를 대기업들의 이익이 현금창고에만 쌓이고 투자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필자는 현 정부가 대기업 때리기에 잠깐이나마 나선 것을 그들의 신념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민 이미지’ 제고를 위한 일회적인 시늉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29일 이명박 대통령은 전경련의 반발에 부딪쳐 “정부의 강제 규정보다는 대기업 스스로 상생문화, 기업윤리를 갖추고 시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발적 상생이 중요하며 강제상생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뒤이어 “전경련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이런 모양새가 현실에서 대기업의 힘에 밀린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겠으나, 필자가 보기에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와 ‘시장 자율’이라는 신념이 현실에서 서로 어긋나는 것을 보고 왔다갔다 하는 행보로 읽힌다.부스러기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이명박 정부는 낙수효과가 학술적으로 실증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만 중소기업 보호 정책이 실효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최소한의 조치마저 시행하기 힘들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납품가 물가연동제, 대기업과의 집단 교섭권 인정, 일방적인 CR 결정 중단 등을 줄곧 주장해 왔다. 이러한 주장들은 무슨 좌파적 정책이라 부를 수도 없는, 대등하고 공정한 대-중소기업 관계를 지향하는 ‘합리적인 시장 정책’이라 할 것이다. 공정한 시장을 주장하는 것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에는 현 정부의 인식 근저에 ‘낙수효과’가 여전히 강한 탓도 있다고 보인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낙수효과는 20년도 더 전에 이미 실패로 판명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이것을 자신의 신념이라고 말한다면, 좋다 인정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어쩌랴. 갤브레이스가 이야기했던 바를 인용하자면, 낙수효과가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말이 먹다 흘린 부스러기에 불과하다.필자주>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