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넷 – 소통과 고통

By | 2018-06-29T17:04:34+00:00 2010.07.16.|

소통과 고통


 


 지난 7월 3일 시청 앞 잔디광장에선 ‘4대강반대문화제’가 열렸다. 2009년 9월 24일, 야간 옥외 집회를 금지하던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이 헌법과 불합치 한다는 ‘헌재’의 판결을 받은 지 280여일만이다. 지난달 말 정부여당의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간 집회 금지’에 관한 새로운 법률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 과정에서 생긴 법률의 공백 기간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내 모습이 무척 한심했다.


 


 문득, 자연과학은 필연성의 지배를 받고 사회과학은 개연성의 지배를 받는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각각의 요소가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할 때 자연과학적 사건은 반드시 일어난다. 반면, 내외적 조건들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사회과학적 사건은 그 발생을 확신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주체로서의 인간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개입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말씀하시던 노교수님의 깊은 주름과 주름보다 깊어보이던 눈빛이 잠시 눈앞을 스쳐갔다.


 


 나는 여전히 숨 가쁜 일정에 휘둘렸고, 행사 장소에는 오후 8시 30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야4당과 각계 단체의 대표들은 저마다의 성명을 끝내고 이미 자리를 떠났으며, 주최 측의 막간 발언과 공연이 번갈아가며 진행되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얼추 500을 넘어 보이진 않았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몇 곳에서 간혹 아는 얼굴들을 발견하고 어색한 수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다지 마음 편한 자리들은 아니었고, 그런 이유로 행사를 마칠 때까지 끝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한 구석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1991년 12월 31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한 선배의 오열을 보게 되었다. 평소 그녀의 경직된 사고를 이유로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며 한동안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했다. 그때는 그 까닭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시간은 무심히 지나갔다.


 


 2008년 나는 두 번 붙잡혔었다. 한 번은 광진 경찰서에서 48시간을 채워야 했고, 또 한 번은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경찰버스 바로 앞에서 피할 수 있었다. 처음 연행됐을 때 피의자 신문을 받으며 열심히 내 무죄를 해명했다. 연행 당시 자행되었던 끔찍한 폭력과 불법성을 전달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신문 조서를 마치고 지장을 찍으려 그 내용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연행을 일임했던 기동대 담당자의 사실과는 다른 진술들과 섞여 나의 진실은 무참히 해체되어 있었다. 거듭된 요청으로 그 내용을 수정하려고 했으나 내 모든 노력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괴하게 변하는 진실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그 사이 지키지 못한 지난 약속들과 별일 없을 거라던 민변 변호사의 조언을 기억해내고는 허탈한 심정으로 경찰서를 나섰다.


 


 소통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진실은 한없이 무력했다. 가끔은 신뢰하던 사람들에게서 조차 나의 진실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질되곤 했다. 저마다의 진실이 마주선 자리에서 혹시라도 내 이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다. 비틀거리던 흔적마다 나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 고통을 더했을 수많은 진실들을 떠올리며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지난 날 3달이 넘는 긴 시간동안 계속되었던 촛불들의 화두는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4대강’을 이유로 한 이번 행사 역시 결국은 소통에 대한 간곡한 염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 아니라 폭력으로 짓밟힌 진실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소통이란 저마다의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했다. 상대방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담담히 바라보는 일이야 말로 소통의 참 모습이란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 때문인지 행사의 마지막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때 좋아했던 가수 안치환의 목소리도 세월의 힘을 이길 순 없는 듯해서 조금 쓸쓸했다. 촛불들의 간절한 염원과 고통은 마침내 광장을 다시 열었고 ‘법’을 바꿀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시청 앞 서울광장에선 전날의 일기 예보와는 달리 비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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