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방송, 인터넷의 눈이 모두 지자체선거로 쏠렸다. 그런 가운데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다음 대통령” 제하의 칼럼(2010년 5월16일자)을 내보냈다. 천안함과 전교조를 들먹이며 색깔공세를 펴는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의 다른 논객들과 사뭇 거리감마저 느껴진다. 김대중은 칼럼에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다음 대통령의 임기는 “예상컨대 대한민국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변화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날 시기”라며 국내 변화를 다음과 같이 내다봤다. “우리 국내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2010년대 우리가 겪게 될 변화는 아마도 지난 30년의 변화를 능가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는 성장통(成長痛)의 단계를 넘어 선진통(先進痛)을 겪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우리의 이 공동체가 롱런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초가 확립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념, 지역,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는 리더십이 그것을 판가름할 것이다. 우리의 다음 대통령은 바로 그 시기를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김대중칼럼의 ‘다음 대통령’ 노림수 김대중 또한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현재의 정치경제체제를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가 언죽번죽 이야기한 “롱런”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다른 논객들과 달리 김대중에게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그런 ‘대통령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이어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이제 불과 2년 반 남았는데 우리 앞에는 이기적 정치꾼, 파벌의 총수, 기회주의자들만 왔다갔다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어떤가. 얼핏 보면 싸잡아 비난하고 있어 ‘공정’해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를 떠올리면 그의 칼끝이 박근혜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김대중은 마침내 “우리는 지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휩싸여 있다”며 다음과 같이 칼럼을 마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상황은 권력과 파벌싸움, 그것도 패자부활전이나 대리전 또는 사이드 게임의 양상일 뿐, 내일의 지도자를 국민 앞에 제시하는 결단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대통령’에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뒤에 숨거나 딴전을 보는 듯한 양상이다. 누가 시장, 도지사가 되고 누가 교육감이 되든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음 대통령’과는 상관이 없거나 소용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6·2 선거를 ‘남의 선거’로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지도자 결핍증을 앓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다음 대통령의 시대’가 걱정이다.” 박근혜 압박하는 이데올로그 뒷받침해주는 신문 요컨대 박근혜에게 지자체선거 지원에 나서라는 압박이다. 박근혜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먹이지 않고 박근혜를 압박하는 데서 노회한 이데올로그 김대중의 ‘솜씨’가 드러난다. 과연 박근혜가 움직일까? 선거는 당 지보부가 책임지고 치러야한다는 박근혜의 당연하고 ‘당당한 원칙’을 가늠해볼 기회다. 짚어야 할 대목은 더 있다. 때로는 말살에쇠살 같은 주장을 펴더라도 20년 넘게 그에게 고정칼럼을 주는 <조선일보>의 ‘결단’ 또는 ‘단결’이다. 이 신문이 기득권세력의 ‘중심’ 구실을 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어떤가. 선거국면에서, 더구나 오월항쟁 30돌을 맞고 있는 데도 진보의 정책대안들이 시나브로 주변화하고 있는 오늘, 기득권세력의 <조선일보>에 맞수가 될 민주-진보세력의 담론에 ‘중심’은 있는가? 우리가 여전히 지도자 결핍증을 앓고 있다는, 그래서 다음 대통령의 시대가 걱정이라는 김대중의 진단에 내가 절감하는 이유다. 물론, 처방은 정반대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