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남유럽 발 재정위기는 세계 증시와 한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면서 주가 하락 행진을 촉발시키고 있다. 2월 이후 두 달 동안 무려 200포인트 이상 상승하던 가운데 주식 투자자들이 품었던 기대는 다시 한 번 꺾이게 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딛고 반등을 시작해 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9월 이후 한국 증시는 1500~1750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며 단기 등락을 반복했고 3, 4월의 랠리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던 것이다. 당분간 이런 변동성은 지속될 것이다.통상 실물경제를 선행적으로 반영하여 움직인다는 주가는 기본적으로 상장기업들의 실적과 실물경기를 반영하면서 움직인다고 알려졌다. 경기 선행지수의 하나로 증권시장 동향을 점검하는 이유도 그렇고, 주식투자자들이 경기 흐름과 기업 실적을 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차원에서만 보면 4월에 발표된 주요 상장 제조업과 금융회사들의 1분기 매출과 순익 실적은 대체로 기대 이상이었고 2분기에도 큰 변동 없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거시경제도 1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8%, 전년대비 7.8%라는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2010년 성장률 전망치가 잇달아 5%이상으로 상향조정되는 분위기였다. 남유럽 재정위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국내 실물경기의 상승세라는 지탱점이 증시를 받쳐주는 것이 정상이다.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실물경기에 따라 증시가 움직인다는 공식은 완전히 깨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증시는 국내 실물경기보다는 뉴욕 증시의 변동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르렀던 2008년 하반기 이후 뉴욕 증시와 한국 증시는 거의 실시간으로 동조화되었다. 여기에 경기회복 동력으로 중국이 급부상했던 지난해부터는 뉴욕 증시와 함께 상하이 증시의 영향까지 동시에 받게 되었다. 해외 변수에 복합적으로 동조화된 것이고 한국 증시가 한국 실물경기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실물경기에 따라 등락을 하게 된 것이다.2009년 12월 이후 그리스를 필두로 유로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시차를 두고 확산되자 한국 증시는 아예 미국, 중국, 유럽 시장 가운데 어느 한곳에서 불안 요인이 발생해도 곧바로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되었다. 미국의 금융규제, 중국의 긴축정책, 유럽의 재정위기라는 3대 해외 요인이 향후 한국 증시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금리인상과 연동된 가계부채나 부동산 동향 같은 국내 변수가 추가되고 속성상 특정하기 어려운 투기적 펀드가 가세하면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한국 증시가 외국 금융시장에 다면적으로 동조화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금융위기 이후 외국인 자금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인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도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지금의 32%보다 더 많았다. 최고점을 기록했던 2004년에는 시가총액의 42%가 외국인 소유였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외국인은 비교적 안정적 투자 포지션을 취한 편이었다. 당시에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월간 5000억 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미국 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7년 이후에는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규모로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는 단기적인 매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7일 하루에만 외국인이 무려 1조 2000억 원 이상의 순매도를 기록한 사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금융위기 이후 주가가 폭락했던 2008년 10월, 다시 급반등했던 2009년 2, 3분기, 그리고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올해 상반기 한국증시의 흐름은 외국인의 단기적인 매매 패턴에 의한 결과다. 그리고 그 절반은 월가 자금이다.그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외국인 순매수 흐름과 주가지수는 정확히 동조화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림1. 2010년 코스피 지수와 외국인 순매수 추이><그림2. 2010년 코스피 지수와 대미환율 추이>그런데 외국인 매매의 영향은 국내 투자자들과 달리 단순히 주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한국 주식을 사고팔기 위해 동원하는 자금이 달러이기 때문에 외환시장을 거쳐야 하고 곧바로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수출 경쟁력과 수입 물가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환율 변동성은 과거에는 주로 경상수지에 따라 움직였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입과 외환시장의 투기세력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면 주가가 떨어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그 반대로 환율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환투기 세력이 가세하면 주가 등락폭 이상으로 환율 변동폭이 커지는 현상도 지난 2년 동안 되풀이 되었다. 최근 주가가 급변동 하는 상황에서 외국인들은 4월까지 순매수한 주식 11조 원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4조 원 이상을 5월 들어 보름 만에 팔아치웠고, 그 결과 주가는 100포인트 정도 빠졌다. 외국인이 판 주식을 사들인 것은 국내 개미 투자자들이었다. 대개 외국인이 해외 동향을 감지하여 먼저 움직이면 나중에 국내 개미들이 뒤따르는 것이 최근의 증시 패턴이다. 기관투자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펀드자금을 운영하는 기관투자가들은 최근 1년 이상 개미들의 환매 요구에 이끌려서 주로 매도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해도 따라하는 게임은 이기는 게임이 될 수 없으며 실제 지난 2년 동안 개미 투자자들의 평균적인 손익계산서는 ‘손해’였다. 2009년 말 현재 우리나라 주식투자인구는 467만 명으로 경제활동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으며 인구대비로는 통계 산출이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에도 코스닥 중심으로 주식투자 인구가 더 늘어났다. 금융위기 결과 세계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부채를 줄여가고 있는 마당에, 한국 국민들은 위험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주식 투자에 더 몰입하고 부채마저 늘려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채는 늘었는데 투자는 평균적으로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 근로 소득마저 줄었던 것이다.이미 세계화된 자본시장에서 한국 주식시장만 안정세를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증권시장이 국내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도록 하면서 생산적인 투자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적어도 외국인에 좌우되는 한국 증시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외국인을 주식 상승을 견인하는 긍정적 주체로 인식하기 이전에 변동성과 폭락을 키우는 위험한 존재로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단기화 되는 외국인의 눈치를 잘 살피고 남보다 먼저 이들을 뒤쫓는 것이 주식 재테크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상적 투자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변동장세를 활용한다면서 현물주식거래가 아닌 주식관련 각종 파생상품 투자에 눈을 돌린다면 그것은 이미 카지노 판에 뛰어든 것이다.이제는 IMF까지 나서서 외국 자본에 대한 적절한 유출입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단기 유동성을 줄이고 장기적 투자를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 IMF의 설명이다. 한국의 개미 투자자들이 정상적이고 정당한 재테크 행위로서 주식 투자를 하고 싶다면 먼저 외국자금 유출입에 대한 적절한 통제 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한국 증권시장이 더 이상 외국인에게 농락당하는 투기판이 아니라 건전한 투자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 5월 24일자 ‘싱크탱크 맞대면’에 실린 내용을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