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잦아들 것처럼 보였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유럽 재정위기로 다시 혼란에 빠져 들고 있고, 한쪽에서는 애플 아이폰이 몰고 온 모바일 인터넷 환경의 급격한 팽창이 IT산업 지형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밀어 넣는 등 2010년대 초입부터 국내외적인 경제 산업지도가 크게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급변하는 경제 환경 아래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한국경제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한국의 산업구조 개편은 세 가지 차원에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첫째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구조개편 압박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산업은 ‘미래의 핵심 성장엔진’으로 강조됐고 그 연장선에서 자본시장 통합법을 통한 투자은행 진출이나 글로벌 메가뱅크 설립이 활발하게 검토됐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의 교훈은 금융산업이 실물과 분리돼 과도하게 자가발전하게 되면 역으로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금융은 독자적 성장엔진이기보다는 오히려 일정한 규제 틀 아래에서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전통적인 자금중개기능의 역할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금융산업 발전의 필수조건처럼 간주됐던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오히려 국민경제로 하여금 외부 충격에 극히 취약할 수 있다는 약점이 드러나면서 이명박 정부조차 조심스럽게 자본 유출입 통제에 대해 수긍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져다준 산업구조 개편 압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간 고용보다는 수익성을 앞세워 경영을 했던 기업들에게, ‘고용 없는 회복’ 국면의 도래는 부메랑이 돼 판매와 매출 부진으로 돌아왔다. 국민들의 구매력 감소와 고실업으로 인해 ‘고용 창출형 산업’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면서 고용효과도 크고 사회 안전망을 넓혀 주는 사회서비스산업 발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재론의 여지가 없이 IT강국으로서 현상유지만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던 IT산업은, 애플의 아이폰 충격으로 한방에 무너지면서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했다고 자부했던 국내 IT기업들은 물론 정부 당국자들까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제조 중심의 국내 IT기업들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세계 IT시장에서 뒤처질 위기에 빠지게 됐고, 정부는 허겁지겁 IT서비스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 폐지됐던 정보통신부를 부활시키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세계 IT시장에서 소프트웨어의 비중은 30%로, 1조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반도체 시장의 4배, 휴대전화 시장의 6배에 이른다. 내년부터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PC 판매를 추월할 것이고 3년 후면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돼 지금보다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사용량이 100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 중심의 IT산업을 모바일을 매개로 한 서비스 중심으로 혁신하는 것은 절박한 과제일 개연성이 높다. 세 번째는, 그동안 소홀했던 에너지 환경의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부상하고 있고, 여기에 브릭스(BRICs)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성장동력이 바뀌면서 막대한 추가적 에너지와 자원이 소요되기 시작하자 에너지와 환경 관련 산업의 혁신이 절박해졌다. 이른바 ‘녹색산업’이 부상하게 된 이유다. 특히 해가 바뀔수록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는 불규칙한 기후변화는 에너지와 환경을 고려한 산업구조 재편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금융 산업의 급제동과 사회서비스 산업의 중요성 부각, IT산업에서의 새로운 혁신 움직임, 에너지 환경 관련 산업의 강력한 필요성 대두라고 하는 글로벌 산업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한국경제로 하여금 금융위기 이후의 안정적인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필수조건이 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물론 우리정부는 일찍이 ‘녹색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2년 전부터 공언해 왔다. 최근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도 에너지와 건강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 내용을 뜯어 보면 신재생 에너지와 같은 전형적인 녹색산업의 추진 성적은 초라하고 녹색으로 덧칠한 회색산업, 토목건설 산업에 막대한 정부 재원과 정책적 자원이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분별한 토목산업이 환경과 충돌을 일으킴은 물론, 그동안 건설산업의 유일한 장점으로 간주된 고용창출 효과도 거의 없다는 것이 입증된 지금 토목산업에 집중된 정부정책은 어떤 각도로 봐도 타당성이 없다. 산업구조 개편은 이제 더 이상 장밋빛 청사진만 화려하게 나열할 만큼 여유로운 과제가 아니다. 금융산업, 사회서비스산업, IT제조업과 서비스산업, 그리고 에너지와 환경산업 전반에 걸쳐 미래 국민의 삶을 기준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토목·건설산업에 대한 집착과 환상을 버려야 한다.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 2010년 5월20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