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극화 시대의 신흥국 위상과 한국의 역할

By | 2010-05-18T16:55:41+00:00 2010.05.1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유일 패권이 무너져 가고 있음은 물론, 반대급부로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를 필두로 한 신흥국의 부상과 놀라운 경제 회복속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바 있고, 신흥국가로는 처음으로 올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예정돼 있어 덩달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나라가 됐다. 신흥국(emerging economies)이라는 개념은 엄밀하게 정의돼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중간단계의 국가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를 포함해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이에 해당된다. 한국 역시 과거에 아시아 신흥국이나 중진국 등의 용어를 섞어 쓰다가 지금은 신흥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선진국 모임인 G7을 대신해 G20이 국제경제질서를 결정하는 중심 회의체로 등장하면서 G7국가을 제외한 G13 국가들이 신흥국을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신흥국 경제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이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선진국들과 비교해 어떤 수준으로 국제경제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국내총생산(GDP)기준으로 신흥국 비중은 지난해 36.4%를 차지할 만큼 커졌다. 2000년에는 29%에 그쳤다. 중국은 10년 동안 비중이 두 배 이상 늘어나 12.5%를 차지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경제규모 2위에 올랐다. 인도가 4위, 러시아가 7위, 브라질이 9위에 랭크돼 있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떤가. 과거에는 신흥국들이 저가 제품을 생산해 선진국에 수출함으로써 경제를 성장시키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바뀌었다. 2000년대 10년 동안 신흥국이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규모는 두 배 정도 늘어났지만 반대로 선진국이 신흥국으로 수출한 제품은 3배가 늘었다. 그 결과 선진국이 생산해 수출하는 제품 가운데 신흥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기준으로 31.6%가 됐다. 10년 만에 10%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도 선진국 시장이 아니라 신흥국 시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신흥국 경제의 급격한 팽창은 이들이 축적한 외환보유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흥국들은 거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배경으로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자국통화가치 방어를 고려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쌓아 왔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 가운데 신흥국이 보유하고 있는 규모는 2009년 기준으로 절반에 가까운 4조달러가 넘는다. 10년 동안 비중이 두 배가 늘었다. 물론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2조3천억달러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나머지 국가들도 과거에 비해 적지 않은 금액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이들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신흥국들이 미국 국채의 42.4%를 소유하면서 세계 경제 패권국가였던 미국의 채권시장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년 동안 신흥국 시장의 위상은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력 상승을 기반으로 최근 G20 정상회의에서 신흥국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기존에는 철저히 선진국 중심으로 운영돼 온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에서의 의결권 확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IMF 지배구조하에서 신흥국의 입지 강화는 G20 정상회의에서 기본적으로 합의가 됐으며, 오는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최종 정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바로 자본시장이다. 여전히 글로벌 자본 이동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에 주고 있는 충격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의 장기 초저금리 상황에서 달러 캐리트레이드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규모의 선진국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되면서 신흥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최대 복병으로 등장하고 있다. 신흥국 시장에서의 급격한 자본 유출입 우려가 그것이다.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로 한국의 주가와 환율이 큰 폭으로 요동쳤던 것도 그간 유입됐던 선진국 자금의 이탈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경제의 역설은 선진국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촉발시키면서 실물경제를 침체에 몰아넣으면 신흥국들이 실물경제를 다시 회복시키면서 안정세를 견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에서의 신흥국 위상의 급격한 제고에 대비되는 금융시장에서의 선진국들의 여전한 영향력, 그리고 국제 금융기구에서의 선진국들의 절대적인 지배력에서 오는 간극은 글로벌 경제질서의 새로운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G20 정상회의는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이 갈등을 조절하는 국제적 협의체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11월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인 한국은 엄연한 신흥국의 일원으로서 이들 갈등을 성공적으로 조정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신흥국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글로벌 자본 이동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 것인가.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 2010년 5월13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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