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생게망게한 일이다. 집권당의 ‘실세’가 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언죽번죽 “좌파 주지”를 들먹인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한나라당 실세 안상수는 여전히 사실관계마저 부정하고 있다. 오죽하면 봉은사 앞에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라는 펼침막이 걸렸겠는가.더구나 그 사실을 밝히려는 재가불자 김영국씨의 기자회견을 권력이 ‘개입’해 막으려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마땅히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진상을 밝히라고 나서야 옳은 상황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불교 내부의 흐름이다. ‘침묵’만 지키는 총무원장만이 아니다. 조계종의 여론이 한 곳으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더러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모습까지 나타난다.‘신도 갈등’으로 몰아가려는 봉은사 안팎의 움직임가령 지난 주말 봉은사의 역대 신도회 회장들이 명진 스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또 발표했다. 대다수 교계 언론(불교전문 언론)은 그 성명을 대대적으로 부각하고 나섰다. 물론, 역대 신도회장이 한 목소리를 냈으니 그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하지만 짚을 게 있다. 그들이 최근 3년 동안 봉은사에 발걸음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현 신도회의 날카로운 지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의 논리가 말살에쇠살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 가운데 ‘대표’격인 6~8대 신도회 회장 안승기씨 인터뷰를 보자. 그는 한 교계신문 기자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봉은사는 특정한 사회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단체가 아니다. 기도와 수행, 신행이 목적인 종교기관이고 성소다. 그런 봉은사가 왜 정치 다툼에 휘말려야 하는가. 주지 스님이 왜 정치 문제에 관여하고 정당, 정부, 청와대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봉은사에 정치 외압이 들어왔다면 외압이 들어올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한 측에도 책임이 있는 법이다.”어떤가. 그들이 본디 강남 절을 다니던 ‘보수적 신도’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봉은사가 왜 정치 다툼에 휘말려야 하는가”라며 그 책임을 엉뚱하게 명진 주지에게 추궁한다.사태의 책임을 엉뚱하게 물으려는 불교 내부의 흐름보수와 진보를 넘어 사실 호도다. 대체 누가 봉은사를 “정치 다툼에 휘말”리게 했는가. 더 큰 문제는 “정치 외압이 들어왔다면 빌미를 제공”했으리라는 발언이다. 과연 그게 지금 참된 불자가 할 소리인가? 날마다 1000배씩 1000일 기도를 한 스님이 그 기도가 끝난 날, 서울 용산의 철거민 참사현장으로 간 게 ‘정치’인가? 그렇다면 지금 종교계의 4대강 죽이기 비판도 “정치다툼”이라 할 셈인가? 왜 권력의 실세가 특정 스님을 겨냥해 색깔몰이를 하는 정치놀음엔 전혀 항의하지 않는가? 다름 아닌 자신들이야말로 ‘정치적’이어서가 아닌가?비단 전직 신도회장들만이 아니다. 종단 내부에도 명진 주지가 불교 내부 문제를 외부로 가져가 종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비난하는 스님들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 불교 내부 문제에 외부, 그것도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사태의 본질 아닌가.더러는 그 문제와 봉은사 직영전환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런 논리를 펴는 이들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왜 총무원이 돌연 봉은사를 접수하겠다고 나섰고 종단 내부 의견수렴도 없이 ‘기습 처리’했는지 사람들을 설득할 논리가 있는가.종단 종회는 ‘권력개입 정보’ 전혀 없이 직영 결정물론, 스님들 사이에 명진 스님 개인에 대한 호오는 얼마든지 있을 터다. 총무원장에 대한 직설적 공격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성싶다. 하지만 그 호오와 아쉬움이 현재 봉은사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데까지 가선 안 된다.큰 틀로 보자. 지금은 양비론을 펼 때가 아니다. 양비론을 펴며 의도했든 아니든 권력의 ‘명진 죽이기’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지 톺아볼 일이다.조계종단의 종회는 총무원의 갑작스런 제안을 받고 권력개입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한 상황에서 직영을 결정했다. 판단에 중요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면 마땅히 진상규명에 나서고 재논의 해야 옳지 않은가.종단의 잘잘못을 명확하게 짚고 가지 않으면 조계종의 ‘명예’를 지키기는커녕 종단의 위기가 무장 커질 수밖에 없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