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언제나 생각이 다른 이들의 자유이다.”이는 독일의 공산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가 한 말이다. 여성이자 폴란드 태생, 유태인, 장애인이라는 온갖 악조건을 안고 러시아 혁명 이후 독일 혁명을 위해 활동하다 재판 없이 처형당한 로자는 레닌과는 달리 혁명에서 노동대중의 자발성을 중시한 혁명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로자의 이 발언을 1980년대 중반 당시 서독 총리였던 헬무트 콜이 인용하면서 서독 사회에서 작은 파장이 인 적이 있다. 그는 서독의 보수적인 기민당 출신으로 1982년부터 1998년까지 16년 동안이나 총리로 재임하면서 1990년 독일 통일을 이끌어낸 정치인이다. 자유에 관한 앞의 발언이 로자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용했는지에 대해 기자가 묻자 콜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콜은 재임기간 동안 전임 사회민주당 정부가 추진했던 동방정책(동독을 포함한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화해협력정책)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보수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를 서독 역사상 처음으로 서독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정책은 훗날 동서독 화해를 증진하고 통일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한국 사회에서는 좌파 척결이 한창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묻혀 잠잠해졌지만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연이은 좌파 관련 발언은 한국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차마 ‘빨갱이’로 낙인찍기는 스스로도 두려워 애써 세련된 표현을 찾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힘겹게 쌓아온 민주주의의 공든 탑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수첩에 “말조심”을 써가지고 다닌들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사례로 개도국들에 널리 선전되고 있는 한국이 지금은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도 있다는 또 다른 사례로 전파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의 자유”를 부정하고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다.이명박정부는 민주정부이며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최장집 교수의 발언을 두고 학계에서 작은 논란이 일고 있다. 투표자의 절반 가까운 지지를 받아 수립되었으니 민주정부로서의 태생적 정당성은 확보하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태생적 정당성이 정권의 모든 정책이나 행위에 대해서 정당성을 자동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일 히틀러정권이 선거를 통해 수립되었다고 해서 유태인 학살이 정당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당성은 5년의 임기 동안에도 끊임없이 국민의 동의를 받아 재생산되어야 하는 존립기반이지 일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정부도 얼마든지 독재 정부로 변질될 수 있다.사회주의 나라들이 왜 그렇게 힘없이 망했을까? 이유야 많겠지만 공산당 일당독재도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야당이 대안세력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권의 위기는 집권세력의 위기로 국한된다. 하지만 과거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대안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공산당의 위기가 곧바로 체제 붕괴로 연결되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의 자유”를 부정하고 야당을 국민의 지지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상대가 아니라 척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세력은 자신의 오류를 국가의 위기로 직결시킬 위험을 감수하는 일당독재 세력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반체제 세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