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를 바라보는 상반된 기준과 위험성의 은폐

By | 2010-04-22T09:32:29+00:00 2010.04.22.|

가계 빚이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중이지만 소득은 크게 늘지 않고 있어 우리 국민들의 시름이 덜어지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화된 부동산 가격 하락 움직임은 국민들에게 더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와의 밀착 공조를 예고하며 취임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최근 행보는 근심에 쌓인 국민을 안정시키기보다는 불안을 키우고 있다. 김 총재는 얼마 전 “부채보다 금융자산이 더 빨리 증가하고 있어 위험한 수준이 아니다”며 가계부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폈다. 이성태 전임 총재가 퇴임 직전까지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가계부채를 지목하며 우려를 표시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수장이 바뀐다고 이토록 인식의 변화가 극적이기도 쉽지 않다. 가계부채가 어느 정도면 심각하고 어느 정도면 심각하지 않은가. 도대체 그 기준이 뭔가. 돈을 빌려 주는 은행에도 BIS비율이나 예대율 같은 건전성 기준이 있듯이 돈을 빌리는 가계에도 건전성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확립된 표준이 없다 보니 어떤 기준을 들이대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김 총재가 위험하지 않다고 하면서 제시한 기준은 부채/금융자산이다. 최근 예금도 늘고 주식이나 증권가격이 올라가면서 부채가 늘어난 속도보다 금융자산이 늘어난 속도가 크기 때문에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지금처럼 금융변동 위험이 큰 상황에서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없다. 당장이라도 금융상황이 돌변해서 주가가 크게 떨어지거나 금리가 오르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숫자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주의할 것은 상당한 경우 금융자산이 풍부한 가계는 돈을 빌릴 이유가 없는 대신 금융자산이 없는 가계들이 부채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충분한 예금이 있는데 예금이자보다 높은 이자를 내면서 별도로 돈을 빌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가 가계부채를 크게 걱정할 필요없다면서 제시하는 기준은 LTV(Loan To Value, 담보인정비율)다. 우리나라 대출의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인데 우리의 LTV는 50% 미만이어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양호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받은 계층은 중·상류층이어서 상환능력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기준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의 전세제도가 LTV에는 감안돼 있지 않을 수 있다. 1억원짜리 주택을 분양받았는데, 4천만원을 대출받으면 LTV는 40%다. 그런데 그 후 분양자가 직접 입주하지 않고 전세를 4천만원에 줬다면 실제 LTV 효과는 80%가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상환능력이 일정하게 가능한 중·상류층이 전체 가계부채 규모에서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각 가계 입장에서 상환능력 대비 부채의 상대규모는 중·저 소득층이 훨씬 심각한 것인데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가계 건전성 기준은 부채/가처분소득이 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기준은 버는 소득으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145%를 넘고 있어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위험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은행 총재나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부채/가처분소득의 비율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함구하고 있다. 부채/금융자산, LTV 등만을 제시하며 가계부채 심각성을 저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원리적으로는 간단하다. 부채/금융자산 비율을 낮추려면 금융자산이 주요 구성부분인 예금이자를 올리든지, 또 다른 금융자산인 주식의 가격 즉 증시를 부양하든지 하면 될 것이다. LTV를 관리하자면 부동산 가격을 붙들어 매든지 아니면 올리든지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 부양으로 다시 관심이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한편 부채/가처분 소득 비율을 낮추려면 부채규모를 줄여 주든지 가처분소득을 늘려 주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부채규모를 줄이면서 소득을 늘려 주는 가장 상식적이고 단순한 방향에 대해서는 별 대책이 없이 이른바 ‘시장의 흐름’에 맡기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가계부채가 734조원이라는 엄청난 규모로 커지면서 가계뿐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의 위협요인으로 된 것은 빚으로 소비하는 경제가 지난 10년 동안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단시일 내에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 안에 피하기 어려운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단기 대응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 있다. 바로 우리 가계 대출이 선진국들과 달리 대부분 금융시장변화에 민감한 변동 금리부 대출이고 또한 10년 미만이 중·단기 대출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금리인상 충격을 쉽게 받을 수 있고, 원리금 상환에 따른 추가 부담이 빠르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이를 인정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 고정금리’로 환승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얼마 전 정부가 저신용자에 대한 지급보증을 10조원까지 늘리겠다고 하는 정책보다는 훨씬 긴요한 정책이다. 하루빨리 구체적인 실행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 2010년 4월22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1 개 댓글

  1. starry 2010년 4월 22일 at 3:51 오후 - Reply

    금융자산 대비 부채 비율을 기준으로 제시한 대목은 한은총재의 철학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하는 군요. 빚을 져서라도 금융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뭐라고 얘기할까요. 한은법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무기한 보류됐다는 소식과 함께 대체 금융위기로부터 무얼 배웠나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지적하신대로 전세자금도 레버리지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전세까지를 포함하면 담보 대비 부채 비율은 어느정도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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