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4·19 피맺힌 하소연 듣고 있나?

By | 2010-04-19T14:38:42+00:00 2010.04.19.|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맺힌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4월 혁명 탑에 새겨진 글이다. 보수적인 이은상조차 혁명에 찬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오는 4월19일이지만 2010년은 더 뜻 깊다. 사월혁명 50돌을 맞아서만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장 뒷걸음질치고 있어서다. 당장 이명박 정권이 강행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톺아보라.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혁명 50돌 뒷걸음질 치는 한국 민주주의국회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의지가 곧 국민 다수의 뜻이라고 부르댄다. 그래서일까. 오만하고 거침없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가 “강남 부자 절의 좌파 주지” 운운했다는 ‘증언’이나 문화방송 파업도 그 연장선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겨냥한 탄압은 지금도 그칠 줄 모른다.역설이지만 이명박 정권은 지난 2년 동안 대통령직선제가 곧 민주주의는 아님을 웅변으로 입증해주었다. 기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민주주의를 옳게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특히 기성세대는 오랜 세월 독재정권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쳤기에 민주주의 이해가 크게 부족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얻을 기회가 적었던 게 엄연한 현실이다.하지만 가정해보자.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입학금과 등록금도 전액 무료인 나라, 고등학교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 사이의 임금 차별이 없는 나라, 대학의 ‘서열’이나 ‘학벌’ 따위가 힘을 쓰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직업의 귀천이 없을 터다. 어떤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일터를 비롯한 온갖 영역에서 차별을 주는 일도 없다.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정보 크게 부족대학 1년 등록금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에 이를 만큼 비싼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이야기다. 사랑과 결혼에서도 학력이 큰 변수가 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겐 낯설 수밖에 없는 사회다. 자신이 일하던 기업이 불황으로 위기를 맞아 실업자가 되었을 때는 어떨까? 정부로부터 평균 임금 75% 가량의 실업 급여를 꼬박꼬박 지급 받는다. 전체 주택 가운데 공공주택이 절반 정도여서 임대료도 저렴하다.‘상상의 나라’가 결코 아니다. 엄연한 현실로 구현된 사회다.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복지 국가들의 풍경이다. 그렇다. 스웨덴 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삶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삶과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를 막연히 선망하거나 이상향으로 소개할 뜻은 없다. 하지만 북유럽 민주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가운데 어떤 사회가 더 바람직한가는 자명하다.찬찬히 성찰해볼 일이다. 옹근 50년 전 이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을 때 희망했던 사회가 오늘의 대한민국일까?사월혁명 50돌을 맞은 오늘, 한번쯤은 우리 모두 스스로 물어보기를 간곡히 제안한다. 사월은 다시 왔는데 저 피맺힌 하소연을 우리 얼마나 듣고 있는가. 저 봄을 선구한 진달래는 우리 가슴에 얼마나 피어나고 있는가.*편집자/ 이 글은 주간 기고문을 일부 수정한 칼럼입니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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