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욱. 3주기를 맞았다. 2007년 4월15일 고인은 분신의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쉰 넷. 열정과 헌신으로 살아온 삶이었다. 고인은 4월1일, 한미 FTA 협상이 벌어지던 호텔 앞에서 “한미FTA 즉각 중단하라”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마지막 온 힘을 다해 한미FTA 중단을 절규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바로 그날 밤 ‘타결’했다.옹근 3년이 지난 오늘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협상실무를 대표했던 김현종은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변신’했다. 강행에 앞장섰던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뒤인 2008년 11월, 세계적 금융위기를 목격하면서 한미FTA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완곡하게 밝혔다. 지금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고 허세욱 3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던 바로 그날 미국에서 “FTA법안은 시간의 문제이지, 결국은 통과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미국 국익 전체를 보고 해야 한다”고 미 의회에 비준해달라고 보챘다. 어떤가. 꼭 2년 전인 2008년 4월에 한미FTA ‘연내처리’라는 조지 부시의 약속을 믿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허용했던 어리석음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모습이다.미국가서 한미FTA 보채는 이명박 정권더구나 이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국회의 비준은 전혀 ‘문제’가 없다. 비단 과반의석을 장악한 한나라당 때문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 명확하게 반대하고 있을 따름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협상 언급이 있었음에도 친노세력은 물론 민주당도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그래서다. 고 허세욱의 삶과 죽음 앞에 새삼 부끄럽다. 빈농의 9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가방 끈 긴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 집회와 시위현장은 물론, 주요 쟁점에 대한 토론회와 강연회를 빠짐없이 다녔다. 나 또한 서울시청 앞 광장 집회 때와 명동 향린교회에서 열린 강연회 때 겸손이 몸에 밴 고인을 만났다.고인은 생업인 택시를 몰며 민주노총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갔다. 참여연대와 민주노동당에도 가입했다. 월간 <노동세상> 최근호에 따르면, 고인이 택시로 하루 340여km씩 한 달을 꼬박 몰아 손에 쥔 돈은 100만 원 남짓이었다. 고인은 그 돈으로 여러 시민사회단체 회비를 내고, 단체 활동가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애면글면 챙겨주었다. 정작 자신은 끼니 거를 때가 많았다. 그 몸마저 결국 민중에 바쳤다.‘학습하고 토론하는 민중’의 전형 고 허세욱무엇보다 주시할 대목은 일상에서 학습하고 토론했던 고인의 삶이다. 고인의 작은 단칸방에는 여러 강연 때 빼곡히 받아 적은 공책이 가득했다. 학습하는 민중의 전형이다. 향린교회에서 강연할 때 그냥 듣지만 않고 기록하던 고인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인은 택시 손님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토론했다. 일을 마치고 달동네인 봉천동 셋방으로 가는 새벽길까지 남은 유인물을 집집마다 넣었다.<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내 책상에는 고인의 작은 사진이 놓여있다. “학습하라, 토론하라, 조직하라”거나 “학습하는 당신이 희망이다”, “민중의 슬기가 희망이다”라는 지난 칼럼들은 고인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고인의 3주기를 맞은 오늘, 옷깃을 여미며 향을 사른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