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그것만큼 비열하고 가련하고 경멸스러운 것은 없다. 한 번 거짓말하면 두 번 세 번 하게 되고 결국은 버릇이 되고 만다.”토마스 제퍼슨의 말이다.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는 말을 따온 이유가 있다. 한국의 자칭 ‘보수’ 언론인들이 칼럼에서 즐겨 인용하는 미국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이다. 제퍼슨의 말은 200년이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정곡을 찌른다. 한나라당 원내 대표 안상수가 봉은사 명진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 주장, “좌파 주지”운운하지 않았다는 주장, 그 모든 게 거짓말이라는 증언이 나왔는데도 대한민국 정가는 조용하다. 집권당 원내대표의 ‘명예’는 물론 도덕성이 걸린 문제인데도 모르쇠다.그래서일까. 마침내 경찰이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는 데도 우리 사회는 둔감하다.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안상수의 거짓말 여부를 추궁하지 않듯이 경찰 성추행 사건도 다루지 않는다.‘안상수 거짓말’에 이어 경찰 성추행도 모르쇠과연 저들을 신문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 경찰이 경찰서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게 과연 가당한 일인가.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피해자는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여성 조합원이다. 경찰서 형사계 안에 설치되어있고 문을 잠글 수 없는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데 남자 형사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동작경찰서는 해명자료를 내 사실을 부인했다. “담당 형사가 피의자를 찾던 중 열린 화장실 틈으로 피의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것을 발견해 화장실 문 앞에서 손짓과 함께 ‘얼른 나오라’고 말했을 뿐”이란다. 어떤가. 경찰의 해명자료를 그대로 믿어도 문제는 남는다. 여성이 들어간 화장실 문틈을 엿보았고 그 틈으로 손짓을 해도 과연 좋은가.더 큰 문제는 피해여성의 주장이 확연히 다르다는 데 있다. 당사자인 기륭전자 분회 여성조합원은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황을 설명했다. <참세상> 보도에 따르면, 조사를 받을 때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아 화장실을 자주 가는 등 안 좋은 상태에서 밥을 먹고 급하게 또 화장실을 갔다”고 밝힌 여성조합원은 “화장실 변기가 더러워 변기에 완전히 앉지도 못한 채 옷을 내리고, 엉덩이를 들고” 있었는데 경찰이 문을 열었고, “그 형사님 얼굴 전체가 다 보였고 그 분도 나를 봤다”고 증언했다. 여성 조합원이 화장실에서 나와 “지금 뭐하는 것이냐”고 따졌더니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문을 열었다”고 했단다. “왜 문을 열었냐. 노크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항의엔 “보호 차원”이라고 응수했다. ‘보호’를 그렇게 하느냐는 추궁에는 “그러면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문을 안 여냐”라고 했단다.화장실 열고 몸을 다 보았다는 데 열지 않았다?사실이 그러함에도 동작경찰서가 문을 열지 않았다고 언죽번죽 ‘해명자료’를 냈다면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여성노동자가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거짓말을 한 셈이다.묻고 싶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경찰일까, 여성노동자일까? 피해여성은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평소 얼굴도 모르는 형사님이 문을 열고 제 몸 전체를 봤다. 그것도 옷을 벗은 상태를 봤는데 안 봤다고 한다”면서 “경찰이 CCTV를 돌려보면 될 텐데 그건 또 인권침해라고 한다”고 비판했다.그렇다. 사소한 일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저들에게 인권이 정말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때가 되었다. 경찰의 성추행 여부는 물론 거짓말 여부까지 남김없이 진실을 밝혀야 옳다. 거짓말이 이명박 정권의 꼭대기부터 맨 아래까지 ‘버릇’이 되어가고 있기에 더 그렇다.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