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로서 4월5일 국회교섭단체 연설을 했다. 한국 정치인들의 연설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안상수의 연설에 주목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에게 정계은퇴를 권하며 ‘인간 안상수’를 되찾을 기회라고 촉구한 바 있어서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성찰도 없어 보인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과 만났을 때 봉은사 명진 스님을 겨냥해 ‘좌파 주지’ 운운했다는 배석자의 증언에 대해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명진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해명이 ‘거짓말’이라는 게 여러 정황으로 확실하게 드러나는 상황인데도 모르쇠다.그렇다고 그가 대표연설에서 ‘불교 외압’과 관련해 침묵만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워야한다”면서 우리 주변에 “상대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이 최소한의 금도도 없이 난무하고 있다”고 부르댔기 때문이다.“언어폭력 난무” 개탄하는 안상수물론, 그 “언어폭력”이 자신에 대한 네티즌의 비판이라고 단언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상대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을 부각한 대목은 그것이 봉은사 외압과 무관할 때 뜬금없다. 결국 언어폭력 당사자가 언어폭력을 한탄하는 꼴이다.그래서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정녕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우”려면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민주주의를 좀먹는 색깔공세, 기독교인 정치인이 불교 내부의 인사에 ‘외압’을 행사하려는 따위의 오만부터 반성해야 옳다.그 성찰은 “선진 국회, 선진 사법”을 강조한 연설 대목에서도 절실하다. 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집권당 원내대표의 선진화 주장이 물구나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면서 “공무원이 법의 경계를 넘어 정치활동을 하고 일부 판사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어 “이렇듯 법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바로 사회의 기본이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마침내 단호하게 말한다. “절대 묵과할 수 없다.”그렇다. 절대 묵과할 일이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국회 선진화’는 ‘법안 자동상정제’처럼 다수당의 국회독재를 보장하는 길이다. ‘다수결 정치문화’를 강조하는 데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 법을 “4월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결기에선 ‘미디어법 날치기’가 떠오른다.‘국회 선진화’도 ‘사법 선진화’도 물구나무안상수는 또 “최근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일부 법관들의 편향된 판결과 법원 내 사조직이 그 이념적 행태로 말미암아 걱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색깔공세에 아무런 반성도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광우병 판결이나 시국선언 전교조 교사에 대한 판결,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의원에 대한 판결은 판사들 사이에서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는 주장도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그가 사법개혁을 들먹이며 그 “진정한 목적”으로 “사법의 독립”을 언죽번죽 부르대는 모습은 명백한 언구럭 아닌가.그래서다. 연설 끝자락에서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부끄러운 점이 적지 않다”고 개탄한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에게 다시 권한다. 선진화를 진실로 원한다면 자신의 자화상부터 들여다보기를. 부끄러움을 읽기를.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