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의 길, 안상수의 길

By | 2010-03-22T09:56:44+00:00 2010.03.22.|

“나는 봉은사 주지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압력설은 황당하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의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밝힌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안상수가 정계를 은퇴해야 마땅한 사안 아닌가. 명진 스님에 따르면 안상수는 새로 취임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당시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도 배석했다.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그래서다. 안상수도 “황당하다”고 나섰을 터다. 그런데 앞대목이 납득하기 어렵다. 봉은사 주지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이명박 정부가 국정을 잘 운영하라고 종교인으로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온 명진 스님을 과연 한나라당 대표가 몰랐을까? 안상수, 봉은사 주지스님이 누군지 모른다?다급하긴 총무원도 마찬가지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대다수 신문과 방송이 놓치고 있지만, 명진 스님은 비단 한 참석자의 전언에만 근거해서 ‘정권의 압력’을 밝힌 게 아니다. 일요법회에서 명진 스님은 총무원장과 나눈 이야기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안상수와 총무원장이 만난 뒤) 자승 총무원장에게 ‘총무원장 된 다음에 청와대나 다른 곳에서 나에 대한 압박이 안 들어오는가’하고 물었더니 자승 총무원장이 ‘좌파 주지가 돈 많은 자리에 앉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해 내가 ‘아무데나 좌파, 좌파 하는데 도대체 좌파의 개념이 뭐냐’고 따졌다.” 그렇다. 총무원장의 확인이다. 설령 그게 안상수가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총무원장에게 누가 그런 말을 했는가를 밝혀야 한다. 조계종을 담당하는 국정원 실무자가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누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총무원장에게 봉은사 주지 ‘자리’를 거론했는가를 총무원은 낱낱이 밝혀야 옳다. 더구나 “좌파” 운운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봉은사는 명진 스님의 주지 취임 뒤 청정도량으로 거듭나왔다. 사찰 재정을 전면 공개하고 절의 모든 일을 신도들이 참여해서 자율적으로 운영해왔다. 사부대중의 수행공동체, 그것이 명진 스님이 봉은사에서 1000일기도로 지며리 실천해온 봉은사의 길이다. 총무원장에게 ‘봉은사 주지’ 언급한 자 누구인가 봉은사가 아름다운 절로 거듭나는 지난 3년 동안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는 무엇을 했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직후 추모열기가 높아지자 사진까지 들고 기자들 앞에 나타나 자신이 “노무현 친구”라고 주장했던 안상수는 곧이어 미디어법 날치기를 주도했다. 얼마 전에는 성폭행범죄가 “좌파 교육”때문이라고 주장했다가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왜곡보도”라고 언구럭부렸다. 그렇다. 봉은사가 지난 3년 걸어온 길과 안상수의 길은 완연히 다르다. 누구의 말에 더 믿음이 갈까.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명토박아 둔다. 스님 중심이 아닌 사부대중의 수행공동체가 또렷하게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총무원의 ‘봉은사 접수’는 명백한 잘못이다. 더구나 총무원장 스스로 밝힌 대로 ‘외압’이 있는 상황에서 ‘접수’했기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르댈 때가 아니다.사부대중의 수행공동체로 거듭나는 봉은사의 길을 가로막은 저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말끔하게 밝히는 일, 한국 불교가 거듭나는 길이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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