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서울 강남에 자리한 절이다. 한국종합무역센터와 마주하고 있는 봉은사는 한국 불교의 ‘얼굴’이다. 하지만 봉은사는 그 얼굴에 값하지 못해왔다.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불거진 폭력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러다보니 절의 외관도 을씨년스러웠다. 온전히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봉은사는 최근 3년 사이에 확연하게 달라졌다. 시민 대다수가 일상에 쫓기겠지만, 가능하면 봉은사를 다시 찾아보길 권한다. 봉은사의 낡은 외관은 들머리부터 경내 깊숙한 곳까지 ‘일신 우일신’ 했다. 수행하는 절에 전혀 어울리지 않던 가로수들이 경내 여기저기 뻗어났던 흉한 몰골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살풍경이던 봉은사는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빼어난 소나무가 즐비하다. 호젓한 산책길도 났다. 절다운 절 만들어 가던 봉은사 비단 외관만이 아니다. 봉은사는 한국 불교계의 오랜 숙원인 ‘사찰재정 공개’를 전격 단행했다. 통상 주지스님과 측근들이 으밀아밀 운영하던 사찰 재정의 견고한 ‘성채’를 앞장서서 허물었다. 그곳에 스님만의 절이 아닌, 사부대중이 모두 주인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절을 세워갔다. 그랬다. 그 모든 게 옹근 3년 전 명진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스님은 취임 직후 봉은사 중창불사를 내걸고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1000일 내내 1000배를 했다. 봉은사 신도들은 무장 늘어났다. 명진 스님의 법문은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시원했다. 중년 남성과 젊은이들이 법회에 참석하는 빈도가 지며리 늘어났다. 그런데 참으로 생게망게한 일이다.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접수’하고 나섰다. 직영사찰로 전환하겠다고 총무원장이 직접 의지를 보였다. 결국 전격적으로 종회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왜 그랬을까? 봉은사 신도들의 의견은 물론, 종단 내부에 공론화 과정도 없이 왜 총무원은 속전속결로 봉은사를 접수했을까? 종단 안팎에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봉은사 ‘전격 접수’한 조계종 총무원 이미 몇몇 일간지에서도 분석했듯이 총무원의 봉은사 접수에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두루 알다시피 명진 스님은 종단 개혁에 앞장서왔다. 봉은사에 취임한 뒤 1000일 동안 기도를 하면서 봉은사 문을 나선 게 단 한 번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다. 본디 봉은사 신도인 권양숙씨의 부탁으로 스님은 고인의 마지막 길에 불교계 대표로서 명복을 빌었다. 1000일 기도가 끝난 뒤 곧장 찾은 곳은 서울 용산의 철거민 참사 현장이다. 스님은 여러 법회에서도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게 자비라는 법문도 남겼다. 바로 그래서다. 명진 스님을 ‘눈엣 가시’로 여긴 사람들이 누구일까는 명확하다. 문제는 그들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기실 그게 ‘검은 그림자’의 속성 아니던가. 봉은사를 흔드는 검은 그림자는 종단 외부에 있을 수도 있고 종단 안팎에 걸쳐 있을 수도 있다. 명진 스님은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일단 명백한 사실만 짚어두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시원하게 울렸던 죽비소리가 질식당하고 있다. 절다운 절을 만들어온 봉은사가 흔들리고 있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