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IT강국, 고용현실에 원인있다

By | 2010-03-11T11:37:36+00:00 2010.03.11.|

“밤 11~12시에 집에 가면 빨리 간 편이었다. 일정이 너무 빡빡했고 투입된 인력도 적었다. 간부들이 저녁 늦게 와서 진행상황을 체크하기도 했다. 날마다 밤늦게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매일같이 12시가 넘어 들어갔지만 사내 인사관리시스템에는 월 10시간 정도밖에 입력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은 입력 자체가 안 됐다.” 20~30년 전의 얘기가 아니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외국인 노동자의 얘기도 아니다. IT강국 한국의 핵심 IT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2010년 지금 일상화된 현실이다. 살인적인 야근으로 폐 절제 수술을 할 만큼 건강이 악화됐지만 산업재해 인정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야근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어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얘기가 최근 한 언론에 실렸다.최근 한국이 IT강국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의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여전히 초고속인터넷보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고, 100명 가운데 98명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며, 만 3세 이상 인구 중 무려 77.2%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 인터넷뱅킹 등록 고객수가 인구를 훨씬 뛰어넘는 6천만명에 이르는 한국이 IT강국 자리에서 추락하고 있다면 믿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다양한 기능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아이폰’을 애플사가 출시하면서 화려한 외형적 지표에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글로벌 IT업계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한국의 삼성전자가 2009년 휴대폰 2억대 이상을 팔아 4조원의 이익을 낼 동안 애플사는 아이폰을 삼성 판매규모의 4분의 1 정도만으로도 삼성 이상의 수익을 올렸던 것이다.그 핵심은 모바일 기계라는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기계의 기능을 무한대로 확장해 주는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였다. 삼성 휴대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삼성 앱스토어에는 불과 5천여개만이 등록돼 있었지만, 애플 앱스토에서는 15만개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을 찾을 수 있다.지금까지 한국의 IT강국의 지위는 반쪽짜리로 지탱돼 왔던 것이고, 그 결과 한국 IT산업 경쟁력은 2007년 세계 3위, 2008년 8위, 그리고 2009년 16위로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에도 뒤지고 있는 실정이니 IT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내 업계가 모바일 기술의 추세를 잘못 읽었을 수도 있고, 지나치게 하드웨어 편향적인 산업이 지속됐을 수도 있고, 정부의 지원정책이 부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이유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 IT노동자의 살인적인 근무환경과 열악한 고용구조다.앞에서 인용한 언론인터뷰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IT 근로자들이 3D업종 종사자로 전락한 지 오래됐습니다. 장시간 노동에 야근수당마저 제대로 못 받는 현실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이폰 같은 뛰어난 IT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IT근로자의 처우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기업과 국민경제의 성장과 경쟁의 원천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줄일수록 수익이 커지는 비용쯤으로 노동자를 생각하는 발상과 경영방식, 정책들이 어떻게 해당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노동현실을 감수하도록 하고 있는지, 그리고 결국은 기업 경쟁력은 물론 산업경쟁력, 국가경쟁력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돌이켜 봐야 한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도요타의 대량 리콜사태의 파문 이면에도 비용을 낮추기 위한 무분별한 글로벌 생산기지화와 하청기업에 대한 가혹한 처우 등이 있었다. 이런 행태가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수익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기업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직장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안정된 고용이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과 국민경제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최근 들어 속속 입증되고 있다. 노동자는 줄일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비용 요소가 아니라, 더 안정된 근무환경을 만들어 줄수록 경쟁력이 늘어나는 성장의 원천이라는 사실에 입각해서 고용이라는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지금부터 3년 전인 2007년 6월, 인터넷 사이트에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사직하겠다는 글을 올린 바 있는데 이미 이때부터 한국 IT강국의 뿌리는 허물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그 글은 이렇게 끝맺고 있었다.“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6시 퇴근, 주 3일 영어학원, 아내와 아들과 저녁식사, 주말에 운동, 가족과 나들이. 한국에서 IT개발자로 있는 한 그건 꿈이다. 내 미래, 5년이 지나고, 8년, 1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이 나라와 이 업계를 떠나서라도 찾아가겠다. IT개발자. 그만둔다.”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매일노동뉴스 2010년 3월11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2 개 댓글

  1. portoce 2010년 3월 13일 at 2:16 오후 - Reply

    기초경제는 소시민들의 소비에서 돌아갑니다.
    대기업도 이 대형마트나 슈퍼로 돈 벌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고, 대형 쇼핑몰이나 인터넷 마켓으로도 돈 벌 수 있는게 이겁니다.
    말씀대로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저변의 돈 흐름도 정체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동감하는 부분은 고용현장 개선투자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임금을 동결하더라도 그 보다 더 돈이 적게 드는 환경개선이나 제도를 만들어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창의력이 중요할 때입니다.

  2. psk810 2010년 3월 23일 at 2:46 오후 - Reply

    글세요… IT 개발자로서 이런 얘기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쩝. 달라지는 건 별로 없더군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물론 이런 얘기들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낳겠지만요…ㅜㅜ 아무래도 노조가 있어야 해결되지 싶은데요… 그럼 이건 산별노조? 차라리 아이폰 쇼크가 몇 건 더 터진다면 더 효과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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